아나 멘디에타

고대의 어느 돌무덤을 열어놓은 듯 나신의 여자가 누워 있다. 얼굴을 뒤덮은 하얀 들꽃이 겨드랑이에서 가랑이, 허벅지 계곡을 따라 흐드러져서 꽃들은 마치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른 듯하다. 주검 속에서 다시 싹트는 생명력을 노래하는 이 사진은 쿠바 태생의 여성 작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의 퍼포먼스 ‘몸 위의 꽃들’이다.

카스트로의 집권혁명 이후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서 열두 살의 멘디에타는 ‘피터팬’ 이라 불리는 미국의 아동구호작전에 의해 수천 명의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보내졌다. 고아원과 입양기관을 전전하며 유랑의 시절을 견뎌온 멘디에타는 오하이오의 아트칼리지에 입학,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

그녀의 초기작들에는 ‘유색인종이자 여자로 살아야 하는’ 이중의 소외와 상흔이 깊이 배어 있다. 힘과 권력의 상징인 수염을 붙이고 찍은 초상이나, 유리 표면에 얼굴을 밀어붙여 뭉개진 코와 입술을 잡은 사진들이 그녀의 정체성에 관한 불안한 응시를 보여준다. 학교 당국에 의해 은폐된 캠퍼스 내 강간 살해 사건을 자신의 아파트에서 재연한 퍼포먼스 ‘강간의 장면’은 침묵과 터부에 대한 몸의 항거였다.

몸이 캔버스고, 붓이요, 무기였던 멘디에타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옮아간 작업이 ‘실루에타’시리즈. 그의 선조인 토착 인디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들판으로 나가 자연과 몸을 일체화시키며 겨우 알아볼 듯한 실루엣을 그 자리에 남겼다. 작은 시내에 누워 그 물살의 일부가 될 때까지 몸을 맡긴다거나, 전신에 진흙을 바르고 거대한 나무에 기댄 채 그와 섞여지길 기다렸다. 대지의 생식기처럼 옴폭한 웅덩이, 초록으로 고인 이끼 위에 눕거나, 바위틈에 켜켜이 쌓인 낙엽 위에 몸을 실었다.

이를 두고 ‘대지예술’ ‘신체예술’이라고도 할 것이고, 흙, 나무, 돌, 물과 불에 새긴 ‘신체 프린트’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이런 행위는 식민통치 이전,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와 역사를 그의 몸을 통해 기억해 내고, 떠나온 고향과 자신의 근원으로 닿고 싶은 제의이자 주술이었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팔을 들어 하늘, 땅과 하나가 되었음을 상징하고, 수평으로 누워 하늘과 땅 그 사이의 존재를 표현했다.

“자연에 ‘실루에타’를 만드는 것은 내 나라와 지금의 나의 집을 연결하는 구름다리이다. 그것은 나의 뿌리를 찾는 일이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이다. …내 뿌리와 정체성은 쿠바 유산의 결과이다.”

멘디에타의 삶은 서른 여섯의 나이에 34층의 아파트 창문 밖으로 내던져지며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의 남편이자 저명한 미니멀리즘 조각가인 칼 안드레는 아내 살해 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섰으나 석방되었고 사건은 미궁으로 남았다. 삶과 죽음, 에로스가 자신의 작업 안에서 나눌 수 없는 하나라고 하던 그의 마지막조차 하나의 퍼포먼스와 같았다. 그는 269피트 상공에 4.21초간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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