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

전시장 계단엔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동물 ‘케르베로스’가 버티고 서있고, 현관을 들어서다 이상한 느낌에 사지를 쭉 뻗고 늘어져 있는 ‘폐타이어’ 고양이가 깔려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그 기발한 유머 감각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여성신문의 인기 연재 만화였던 ‘반쪽이의 육아일기’의 작가 최정현씨가 고물 조각가로 나섰다. 9월 24일까지 종로구 가회동 북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전에는 산업폐기물과 폐품을 활용해 만든 ‘고물 조각품’ 300여 점이 전시된다.

한번에 지나칠 수가 없이 무엇으로 만들었나 조목조목 따져보게 되는 그의 작품에는 해학과 재치, 아이디어가 넘쳐흐른다. 목욕 바구니로 쓰는 하얀 플라스틱 바구니에 ‘뚫어 펑’ 고무 압착기를 올려놓으면 국회의사당이 되고 선풍기 뚜껑을 납작하게 눌러 거미줄로 변신시켰다. 못 쓰는 신용카드를 머리빗 모양으로 오린 뒤에 붙인 제목은 ‘카드 빚’이다.

그러나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작품에는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사회현상과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 납작하게 눌린 머리 부분에 타이어 자국이 선명한 야생동물은 ‘로드 킬’.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하다가 차에 치여 숨진 동물을 의미한다. 컴퓨터 자판으로 만든 뱀이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네티즌’과 자판을 동그랗게 말아 수류탄 모양으로 만든 ‘네티즌 2’는 댓글 한마디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는 네티즌을 비판한 것이다. 초기작이라며 애착을 보이는 ‘짭새’는 최루탄으로 만든 둥근 새가 갇혀 있다. 최루탄은 예전에 학생운동을 할 때 주워놓은 것이란다.

이 모든 재료를 어디서 얻었을까. 그는 “화성 고철시장에서 ㎏당 200원에 고철을 사옵니다. 재활용품 수거일에는 내가 내놓은 폐품만큼 다른 사람들 것을 집어오죠”라고 답한다.

“이제 만화는 안 그리시나요?”라며 ‘반쪽이’ 시리즈가 재개되길 바라는 독자들이 많다고 얘기하자 그는 “고등학생이 된 하예린이 자신의 얘기를 공개하기 싫어하니 아빠로서 별 수 있느냐”면서 수백 개의 펜촉으로 만든 고슴도치를 가리킨다. 펜촉은 20년간 만화를 그리면서 사용한 펜촉을 모두 모은 것으로 고슴도치는 아이를 키우는 부성애를, 고슴도치 주둥이에 매달린 작은 종은 ‘만화는 종쳤다’는 뜻이란다.

미국 여행 중 자연사박물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그는 앞으로 20∼30년간은 이 작업에 빠져있을 거라며 나중에 진짜 ‘고물자연사박물관’을 만들어 미국 자연사박물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작가와 함께 재활용품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권한다. 문의 02-741-2296

펭귄
▲ 펭귄
국회의사당
▲ 국회의사당
카멜레온
▲ 카멜레온
네티즌2
▲ 네티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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