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편 (9) 퍼스트레이디 역사 새로 쓴 힐러리 클린턴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주유소에 갔다가 우연히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의 옛 남자친구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물었다.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 그러자 힐러리가 되받았다. “아니, 바로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

대학시절부터 “내 남자 친구는 대통령이 될거야”라고 다짐했던 힐러리는 93년 자신의 말대로 남편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러모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의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다. 그녀는 전문 직업을 가진 첫 퍼스트레이디였으며, 백악관 서관에 자기 사무실을 가진 최초의 대통령 부인이다. 그녀는 또 처음으로 남편의 재임 시 선거에 나섰던 퍼스트레이디이며, 뉴욕 주에서 당선된 첫 여성 상원의원이자, 2008년 대선에 여성 최초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꿈을 구체화하고 있는 중이다.

퍼스트레이디로서 힐러리 클린턴은 큰 고비를 두 번 넘겼다. 첫 번째는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 직후 의료보험 개혁을 직접 지휘하다가 무산됐을 때고 두 번째는 불법정치 자금 모금과 관련된 화이트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그녀의 동업자 빈센트 포스터가 갑자기 자살한 사건이었다.  

의료보호 개혁은 미국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러나 퍼스트레이디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자 각료들은 물론 국민도 반발했다. 미국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의 지위를 부부가 공유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료보호 개혁 실패 후 그녀는 전문직 여성의 상징인 쇼트커트 머리를 약간 긴 단발로 바꾸고 진주 목걸이와 귀고리를 착용하는 등 전업주부의 유연한 모습으로 겉모습을 바꾸었다.

 “목을 비틀어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미웠다.”

힐러리는 그녀의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클린턴이 외도를 고백했을 때의 기분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힐러리는 플로렌스 하딩, 재클린 케네디, 레이디 버드 존슨 등 역대 퍼스트레이디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성적인 부정행위를 참았다. 왜? 남편을 위해서? 그녀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미국을 위해서?

이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이다. 저널리스트 케이트 마튼은 클린턴이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면을 보여준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는 지적이고 성숙된 파트너십으로 그들의 결혼생활과 남편의 대통령직을 모두 지켜냈다고 평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편집장을 지낸 에드워드 클라인은 힐러리가 난봉꾼 남편의 약점을 봐주는 대가로 자신이 남편의 정치에 관여하는 지분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니카 르윈스키가 아니었다면 힐러리는 (정치)스캔들로 얼룩지고 인기도 없는 퍼스트레이디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모니카가 하루아침에 가련한 인물로, 또 전국적 순교자로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간혹 힐러리는 ‘계산만 있고 가슴은 없는(All Calculation, No Heart)’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힐러리가 없었다면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까지 해가며 그렇게 국정을 잘 수행할 수가 있었을까? 어쨌든 그녀는 남편이 섹스 스캔들로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할리우드 배우처럼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은 채 남편과 키스하는 장면을 외부에 노출시킴으로써 부부 사이가 무사함을 확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힐러리는 1947년 10월 26일 일리노이에서 태어나 중산층의 생활을 하며 안정된 유년 시절과 성장기를 보냈다. 웨슬리를 졸업하면서 학생대표로서 졸업사를 했다. 예일 로스쿨에 다니던 힐러리는 클린턴을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녀는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클린턴의 연간 수입보다 4배나 많은 금액을 벌어들였을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으며, 미국의 100대 변호사에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그들은 결혼 후에도 힐러리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대선 유세 기간에도 공동 대통령을 자임하며 ‘일석이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힐러리는 여성문제에 적극적이다. 그녀는 지난 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당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베이징 대회에서는 성 및 생식 건강을 포함해 여성은 성적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갖고 있다는 강령을 채택한 바 있다. 힐러리는 2005년 뉴욕의 여권단체인 ‘국제여성건강연합(IWHC)’이 주는 올해의 상을 수상했는데, 이 자리에서 여성의 낙태권에 반대하고, 에이즈 퇴치를 위해 금욕을 중시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편 미국 시에나 대학의 역대 퍼스트레이디 대통령 평가 조사에서 힐러리는 2위(93년)에서 5위(2003)로 약간 내려앉았는데, 이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에 대한 공화당의 집중적인 견제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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