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소설가

여성신문이 18세 생일을 맞은 걸 축하드립니다. 마치 제가 18살이 된 것 같습니다.

여성신문이 태어날 당시를 생각하면 저 개인적으로는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 속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당시 여성신문 창간을 준비하고 있던 고정희 시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훌륭한 시인이었지만 독신이어서 그랬는지, 혹은 일부러 그랬는지, 제가 어미로서 겪고 있는 참척의 고통에 대해서는 위로의 말도 없이 그가 창간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신문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그는 내가 무언가를 써 주어야만 여성신문을 창간할 수 있을 것처럼 강압적으로 말했고 저는 무력하게 이끌려간 게 결국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연재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써 주어야만이 여성신문을 창간할 수 있다는 고정희 시인의 말이 나도 뭔가를 써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성년을 맞은 여성신문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지난 18년 동안 우리 여성들은 많은 변화를 겪고 놀라운 도약을 이루었습니다. 억압받고 소외되고 항상 억울한 위치에 있던 여성들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당당하게 제 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습니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비로소 성인이 된 여성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덕담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쟁취한 결과를 사유화하지 말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달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미국에 살면서 해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들을 돕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는 어머니들의 자선모임에서 비슷한 취지의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회는 IMF 때 고국을 방문했다가 갖가지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들을 목격한 한 어머니가 미국으로 돌아가서 모임을 발기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많은 회원을 거느린 큰 단체로 발전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면 관계상 그때 한 제 강연 원고의 일부로 축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IMF 때보다 몇 배 더 어려웠던 일제 말기나 6·25전쟁 그 극빈했던 시절에도 사람 사는 동네라면 누가 얼어 죽었다는 소리는 있어도 굶어 죽었다는 소리는 안 내며 열심히 인구를 불리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십시일반의 정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열 사람이 제 밥그릇에서 한 숟갈씩만 떠내도 밥 한 그릇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십시일반의 정신은 끼니 때 들이닥친 배고픈 군식구를 마치 미리 밥 한 그릇을 따로 지어놓았던 것처럼 그 군식구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먹여 보낼 수 있는 심성이 되었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한 사람쯤 구제하긴 쉽다는 공동체 의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군식구가 없을 때도 우리 어머니들은 부뚜막에 작은 항아리를 놓고 식구들 쌀을 씻기 전에 한 움큼씩 쌀을 덜어내어 그 항아리에 모았다가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데 썼습니다.

우린 그때 생활 정도를 말할 때 곧잘 쌀이나 밥에 비유해서 말했는데, 지금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계층을 ‘밥술이나 먹는다’고 말했고, 밥술이나 먹게 되면 인간이 지켜야 할 이런 도리가 뒤따랐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해도 큰 부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문직을 가졌건, 상업에 종사하건 열심히 정직하게 벌어서 자기 몫의 밥그릇에서 한 숟갈 정도 덜어내도 자리가 안 날 정도의 항산(恒産)을 지닌 중산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초청을 받거나 관광을 하러 외국에 나갈 일이 생기곤 합니다. 처음 외국에 나가본 게 80년이었는데 그때는 여권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고, 비행기가 이 땅을 이륙할 때의 황홀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 여행지가 프랑스였는데 사람들이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거로구나, 너무 부러워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어떻습니까. 남과 우리를 비교하기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안내가 전문 가이드건 친지건, 으레 그 나라 국민소득을 들먹이는데 국민소득이 우리만 못하면 못해서 우습게 보고, 더 높으면, 높으면 뭘 해 이 정도밖에 못살면서, 하면서 얕보려듭니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처럼 떵떵거리고 잘 사는 나라는 드뭅니다. 떵떵거리고 산다는 말은 원래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는 벼락부자가 사는 작태에 대한 모멸과 야유를 담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다들 한번 떵떵거리고 살아보기를 손톱만큼의 부끄러움도 없이 삶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 허황한 풍조가 만들어낸 분수를 넘은 소비풍조와, 잠들 시간 없는 환락가의 휘황한 불빛은 6·25의 궁핍을 체험의 원점으로 간직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혹시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혼란 상태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러나 휘황한 불빛일수록 그 그늘은 더욱 짙은 법입니다. 아직도 IMF 때 추락한 경제를 추스르지 못한 빈곤층들이 번영의 그늘에 가려져 있고, 다 같이 힘들 때보다 빈부의 격차는 한결 더 벌어져 심각한 상태입니다. 중산층도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공포감 때문에 이웃을 돌볼 여유를 못 가집니다. 제 영역을 지키고, 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각자의 담장은 날로 높아지고 친척이나 상부상조하는 이웃사촌의 개념이 사라진 지도 오래입니다. 내 식구의 안전만 도모하는 가족이기주의마저도 믿을 게 못 돼, 돈을 못 버는 가장은 즉각 퇴출당해 노숙자의 신세로 전락하는 게 요즘 세태입니다.

십시일반, 이웃사촌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일 고통 받는 게 아이들입니다. 아이들도 도움을 청하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인 빈곤감과 소외감은 굶주림보다 훨씬 심각하고 또 치유가 어려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늘진 데까지 스며들 수 있는 여성적인 손길이 극빈했을 때보다 더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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