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 없었으면 겨울 못 견뎠지”

“착한 사람들이 연탄도 주고, 김치도 주고 그러니까 겨울을 나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한겨울에 수도라도 얼면 수리비가 30만 원이야. 얼지 않게 이불로 꽁꽁 싸매놔야지.”

서울 시내 몇 안 남은 달동네 ‘개미마을’(서대문구 홍제3동 산1번지)에 사는 김경출(79) 할머니는 겨울마다 연탄을 가져다 주는 봉사단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탓에 이미 9월부터 ‘겨울’을 나야 하지만, 한 드럼에 18만5000원인 석유 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월 30만 원 정도의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는 김 할머니는 “월세 8만 원과 전기세·수도세·전화세 등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판잣집들이 개미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고 해서 ‘개미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전체 280여 가구 중에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월수입이 40만 원에도 못 미치는 가구가 80여 개에 이른다. 지금까지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영세민 거주지다.

특히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많은데, 홀로 사는 할머니만 10가구가 넘는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무허가 판자촌에 살면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월동 준비라곤 수도꼭지에 이불을 싸매거나 봉사단체들의 연탄 기증을 기다리는 일 뿐이다.

7년 전 할아버지와 사별하고 현재 고혈압을 앓고 있는 정연임(73) 할머니는 “얼마 전 한 봉사단체가 연탄 300장을 넣어주고 갔다. 이 연탄이 떨어질 때쯤이면 다른 단체가 또 넣어주니까 그나마 겨울을 나기 수월해졌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박남순(80) 할머니는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살기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했던 것. 현재 단체들의 연탄 지원은 동사무소, 복지단체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수급자 명단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을 대신해 일주일에 세 번 구청에서 하는 일용직 길거리 청소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다는 박 할머니는 “전기세가 비싸 한겨울에만 전기장판을 쓰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김진호 ‘사랑의 연탄나눔’ 간사는 “사실 박남순 할머니처럼 수급자보다 더 어려운 분들에게 지원의 손길이 가야 하지만, 동사무소나 지역 복지단체에서 이런 분들까지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민간단체 입장에서도 정부의 ‘공식적’인 수급자가 아닌 분들을 지원하면 ‘후원금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는 구설에 오를 수 있어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 수급자의 등록 및 관리는 지역 동사무소가 관할하고 있다. 이채민 홍제3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주사는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에 연료를 우선 배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며 “복지 혜택의 배분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단전, 가스공급 중단, 연탄배달 지연 등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산업자원부에 ‘에너지 콜센터’(02-2110-5678,9)를 설치하고 24시간 운영키로 했다. 이와 함께 연탄 방출량을 지난해 211만t에서 223만t으로 늘리고, 저소득층에 연탄이 차질 없이 배달될 수 있도록 긴급 수송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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