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등록법 시행…남성중심 호적 대신 ‘1인 신분등록부’
양성평등한 가족시대 열려…절차 간소화·법률명 개정 등 과제

내년 1월부터 여성도 자신의 성(姓)과 본(本)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개인별로 본인의 신분과 가족관계를 관리하는 가족관계등록제도(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남성(호주)을 기준으로 해당 가족의 출생 및 혼인, 사망 등을 기록·관리하는 기존의 호적제도는 폐지된다. 이에 따라 무조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했던 신분상 성차별이 사라지고, 남녀가 평등한 가족관계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  ▶관련기사 A5

새 신분제도는 남자든 여자든 개인별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어 신분상 동등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개인별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본인의 성명·성별·생년월일·주민번호 외에도 결혼 또는 이혼 사실 등이 기재된다. 지금까지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호적에 편입되고, 이혼하면 친아버지의 호적으로 복귀해야 했다.

물론 새 법에서도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주의(父姓主義)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부부가 합의한 경우 혼인신고서를 낼 때 확인서를 제출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물려받는다.

새 신분등록제도는 부계 혈통주의에 기반한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경직성을 완화시킨 점에서 남녀가 평등한 가족시대에 한발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개인별 신분등록부를 채택하고도 이름은 ‘가족관계등록부’로 하는 등 ‘개인’보다는 여전히 ‘가족’을 중시하는 시각을 담고 있어 ‘절반의 성공’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 김경애)과 5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목적별 신분등록법 제정을 위한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 등은 지난 1일과 4일 가족관계등록법 평가 토론회를 잇따라 열고 ▲법률명 개정  ▲본(本) 규정 삭제  ▲혼인외 자녀의 기재 규정 삭제 ▲어머니의 성과 본 따르기 절차 간소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은희 교수(제주대 법학과)는 “법률명은 해당 법의 내용을 포괄하고 이념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면서 “새로 제정된 신분등록제의 핵심은 개인별 신분제이므로 법명 역시 내용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호주제 폐지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보수계층에 일종의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며 “헌법 정신인 개인 존중을 가족의 기초로 하기 위해서는 법률명을 개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남성민 대법원 등기호적심의관(판사)은 “법률명에 ‘가족’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는 공청회 과정에서 ‘신분’이라는 말이 사회적 지위나 계급을 나타내는 부정적 의미로 쓰여 그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심의관은 “좀더 나은 표현이 있다면 추후 법률 개정 때 다시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때 신고인의 부담을 덜도록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고, 자녀의 출생신고서에 별도 표시란을 만드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명 개정 요구에 앞서 국민적인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혜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세대는 새 신분제의 시행을 두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이전에 심리적·정서적으로 거부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국민 모두가 새로운 가족제도를 이해하고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꾸준한 홍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목적별 신분등록법 제정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번 토론회에서 지적된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내년 1월1일 시행 전까지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 과정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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