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슬픈 여성들에 바치는 헌화가
지난 2000년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으로 여성의 몸, 자궁의 상징인 어머니 등을 주소재로 다루며 에코 페미니즘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사유의 저변을 타인으로 넓혔다. 특히 이번 시집은 이 시대 슬픈 여성들을 위무하는 헌화가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이미 저자의 첫 시집에서 "곧 나올 그의 세번째 시집은 아마도 자신이 꽃임을 잊어버린 이 시대 슬픈 여성들에게 바쳐질 것이다"라고 예고한 바 있다. 예상대로 시인은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야신이 이스라엘의 미사일 폭격으로 살해당한 소식에 총탄을 모으는 팔레스타인 소녀를 위무하고(제비꽃밥), 일본군에게 온몸을 유린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토로한다(열네살 무자).
"징용 끌려온 조선인 군인들이 아스피린 같은 걸 얻어주곤 했어. 약을 먹으면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아래가 터지는 줄도 몰랐네… 통통배에 태워져 여자 없는 섬의 부대에 배급 보내지기도 했네. 한번 가면 열흘…//…606호 주사, 애 못낳는 주사, 아주 힘들다고 하면 잠 오는 약을 하나씩 주었네. 내 나이 열네살…"
이처럼 저자는 '열네살 무자'라는 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강순애 할머니의 삶을 뜨겁게 이야기한다. 또 다른 이념을 가진 그림자에게 밥 지어 먹인 것도 죄라 하는 세상에 슬피 우는 여인(봄잠)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저자의 언어는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슬픈 여인들을 따뜻하게 보듬는다.
이번 시집은 작가 특유의 여리고 물기 많은 여성적 시어를 가득 담고 있다. 시인은 특유의 언어감각으로 세상 모든 사물들이 넘나들며 서로의 기원을 이루는 삶을 보여준다. 그가 보여주는 삶에는 리듬과 색깔과 촉감의 관능이 자연스럽게 넘쳐흐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시적 자아가 우주의 온갖 사물 속으로 확산되고, 또 거꾸로 우주의 만물이 시적 자아 속으로 수렴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전해주는 '생명의 향연'에 잠시 귀 기울여보자.
"그대가 말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 지성사/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