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잎이 올라오는 기쁨…노동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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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기자 asra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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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터뷰 한다고 책에 나온 그 미용실에 다녀왔어요. 값도 싸고 인심도 좋고, 역시 시골 미용실이 최고예요."(웃음)

'풀각시'가 바빠졌다. 본지에 '풀각시의 시골살이'를 연재하고 있는 박효신(58·여성신문 편집위원)씨 얘기다. 모친과 단둘이 살고 있는 충남 예산과 서울을 오가며 농사 지으랴, 사람 만나랴 요 몇년 풀각시 삶이 이리 바빴던 적이 없었단다.

이유는 다름 아니다. 그동안 여성신문에 연재한 칼럼과 개인블로그 '풀각시 뜨락(blog.naver.com/hyoshin4858)'에 올린 농촌일기를 간추려 펴낸 '바람이 흙이 가르쳐주네'가 연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그래서 몸은 바빠도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책에는 '녹색일기장'이라는 부제답게 수십년간 도시인으로 산 풀각시가 억대 연봉을 버리고 농촌에 자리잡은 뒤 겪은 좌충우돌 시골살이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책에서 저자는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시골 미용실에서 온동네 소식을 다 주워들으며 1만3000원짜리 파마를 하고, 팔순을 넘긴 모친과 함께 일주일에 두번 남짓 서는 5일장을 손꼽아 기다린다. 직접 키운 옥수수와 감자 등을 내다 파는 재미도 도시생활에선 꿈도 못꾸던 일이다.

시골생활의 행복과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저자는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아유~"라고 자신이 수년 전 떠나온 도시의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일러준다.

그가 귀농생활을 결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한국일보 기자, 여성신문 편집부장, 한국광고주협회 상무 등을 거치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오다 40대 중반 들어서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고.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것도 많지만 욕심과 번뇌, 가식적인 인간관계 등으로 많이 지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50대 후반부턴 부모님과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자. 살아오며 지은 죄가 있다면 다 용서받고, 가능하면 더 이상 죄 짓지 말자'고 다짐하고 차근차근 귀농을 준비했죠."

그는 우선 살 곳부터 물색했다. 부모님 고향인 충남 예산이 적격이라 여겨졌다.

"1994년도인가 아파트 분양 붐이 일 때 아파트 분양을 받는 대신 돈 9000만원으로 전체 가구가 25호인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 마을에 땅을 샀어요. 95년에는 집도 다 지어서 부모님이 먼저 내려가셨죠."

지난 2004년에는 온양민속박물관장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응모를 했다가 덜컥 붙게 됐다. 온양과 예산은 차로 30분 거리. 일을 하며 시골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자는 억대 연봉도 포기하고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난해 4월, 혼자 남은 어머니를 돌보고 농사일에도 전념하고 싶어 박물관마저 그만두고 제대로 '농사꾼'이 됐다.

"1년 동안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원에서 최고농업경영자 과정을 이수했어요. 벼농사를 제외한 모든 채소, 과수의 재배과정을 배웠죠. 수강생 중 초보 농사꾼은 나 하나여서 동기들에게도 많이 배웠어요."

그는 "다른 분들은 다들 전문가라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안하는데 나는 배운 대로 간격까지 자로 재가며 했더니 결과가 좋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저자는 올해 30여가지 씨앗을 파종했다. 찰옥수수, 단호박, 수세미의 여린 잎이 쑥쑥 올라오는 걸 보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오전 9시까지 꽃, 나무들을 둘러보고 밭에 나가 잡초를 뽑는다. '풀과의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군청으로 달려가 포토샵과 엑셀 등을 배운다.

"요즘은 여름이라 한낮에는 일을 안해요. 은행업무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요. 또 역전장이 서는 날, 엄마 손 잡고 장구경 가는 재미도 쏠쏠하죠." 

업무 강도로 보면 고된 시골생활이지만 요즘 그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며 느낀 것이 있다면 인간보다 위대한 게 자연이라는 사실.

"흙과 바람에게 배운 것이 있어요.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도 아니고, 강한 존재도 아니며, 지구의 주인은 더욱 더 아니라는 점이죠."

그는 "도시에 대한 도피로 시골을 찾으면 안된다"며 "시골에서의 삶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인 만큼 충분히 준비하고 결심한 후 귀농해야 한다"며 귀농을 꿈꾸는 이들을 향해 넌지시 일러주었다.  여성신문사/1만1000원

 

옥수수 처음 팔던 날

"과연 내 물건이 팔리기나 할까?" 그는 얼마 전 생전 처음으로 직접 키운 옥수수를 갖고 시장 한 귀퉁이에 좌판을 벌였다. 하나도 못팔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한개 500원, 좀 작은 것은 5개 2000씩 팔던 옥수수가 1시간 만에 완전 매진됐다.

자릿세 200원을 내고 V자를 그리던 그의 손엔 귀하고 귀한 5만원이 쥐어졌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꿈꾼다

미혼인 그는 오늘도 손톱에 빠알간 봉숭아물을 들이고 사랑을 기다린다. 여름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뤄진단 말을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가수 바비킴의 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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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바비킴 콘서트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이번 책에 쓸 사진을 위해 사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바비킴이 직접 브로마이드에 사인을 해서 보내줬다며 싱글벙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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