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본 영화 '화려한 휴가'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트럭을 타고 광주 시내를 누비며 애절한 목소리로 가두방송을 했던 전옥주씨는 5·18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막바지, 여주인공 신애(이요원)가 이를 재현하며 가두방송을 하는 부분은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며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광주항쟁을 재현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지난달 25일 개봉 이후 2주 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 올해 흥행 선두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폭력에 대한 충격으로, 3040세대는 대학시절 경험했던 투쟁을 떠올리며 영화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항쟁 속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러나 영화 '화려한 휴가' 속에서 보여지는 5·18 속 여성의 역할은 간호사로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가두방송에 나서는 신애뿐이다.

"여성들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야. 당시 광주 전역에서 여성들이 군인들의 타깃이 되어 고초를 겪었고, 어머니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았지. 총칼을 들고 싸우지 않았어도 밥을 나르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참여를 호소하면서 시민군을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은 여성들의 힘이었지. 그런데 영화 속에 그런 건 제대로 나오질 않더라구."

민주화운동을 겪은 어머니들의 모임터인 '5월 어머니의 집'의 안성례 관장은 영화 속에서 항쟁 당시 함께 싸웠던 여성들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달라고 사정하는 할머니, 아이를 생각하라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부인, 새벽에 다시 전장으로 떠나는 남편을 모른 체하는 게 아내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부인, 현장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간호사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여성들은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항쟁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이 영화 또한 광주항쟁을 남성중심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화려한 휴가'가 5·18을 재현한 영화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도청에 모였던 시민군들 외에 광주 전역에서 함께 했던 남녀노소의 활약을 제대로 그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5·18을 차용한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

'화려한 휴가'가 보이는 한계는 이 영화의 태생에서 기인한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매력적이지만 자칫 다큐멘터리로 흘렀다가는 흥행성을 얻기 힘든 소재.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는 "5·18을 소재로 한 대중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했다지만, 대중성을 얻으려는 제작진의 시도는 소시민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휴머니즘 영화를 낳았다.

서울대 입학을 꿈꾸는 똑똑한 동생과 순박한 형, 이들의 이상형인 천사처럼 상냥한 여성의 캐릭터는 너무나 전형적이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나 코믹한 조연들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캐릭터를 반반씩 섞어놓은 느낌이다. 그들의 투쟁과 희생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 구석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남는다.

이는 대량학살을 벌인 주체인 국가권력의 존재는 간데 없고 중간 명령자인 장군의 독선적인 결함에서 시작된 듯 묘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 또한 시민군 조직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전직 군인인 일개 개인의 아이디어처럼 축소된다. "역사를 소멸시키는 스펙터클"이라는 조지영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물량을 앞세운 전투 신과 전형적인 캐릭터 속에서 광주항쟁의 역사는 사라지고 남는 건 휴머니즘 블록버스터뿐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역사적 재해석이나 광주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의 '중성성'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맛동산 CF와 전설의 고향에 열광하는 착하고 코믹한 사람들'이라는 감독의 '민중'에 대한 인식이 실재 사건을 비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화려한 휴가'의 존재가 의미하는 중요성은 크다. 광주에 대해 알면서도 입을 막아야 했던 시절을 지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탄생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날의 광주를 직접 체험한 광주 시민들의 감격은 영화에 대한 아쉬움과는 별개로 각별하다.

안성례 관장은 "사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참혹했지만 관객들은 영화 속 장면만으로도 충격을 받더라"면서 "광주를 잘 모르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이 꼭 보길 바란다"며 울먹였다. 또한 "영화를 통해 평화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또한 이 영화는 광주를 사라진 역사의 한 페이지쯤으로 생각했던 오늘날의 국민들에게 잊혀진 사건을 돌이키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영화를 보고 광주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다녔다"는 등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1020세대의 감상글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12세 관람가로 설정된 탓에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광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영화를 필두로 역시 광주항쟁을 다룬 '26년'(강풀 원작, 이해영 감독), 제주 4·3항쟁을 다룬 '순이 삼촌'(감독 임종재), 노근리 사건을 그린 '노근리 전쟁'(감독 이상우) 등 암울한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의 제작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는 점이다. 앞으로 다뤄질 현대사 소재의 영화들이 얼마나 '화려한 휴가'에서 진일보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