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이야기 여성사’ 시리즈로 묶어
“여성학, 열정 있는 한 위기는 없다”
여성신문이 기획하고 이화여대 출판부가 펴낸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헌법학자 윤후정’이 바로 그것이다. 여성신문의 대표 연재물이었던 ‘이야기 여성사’의 한 시리즈로 지난해 상반기에 게재됐던 연재 기사를 바탕으로 1년 여의 시간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다듬어져 나왔다.
주인공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은 한국 최초의 여성 헌법학자로 헌법에 양성평등 조항을 삽입시키고 법여성학을 정립했으며, 70년대 크리스챤아카데미 활동을 통해 ‘여성 인간화 선언’을 공표하고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여성학을 도입, 정착시키는 등 근대적 의미의 여성운동 이론을 제공했다.
특히 1998년 여성정책 전문 부서의 시초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현재의 여성부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취재 기사 형식을 띤 회고록이기도 한 책 출간에 맞춰 이화학당에서 윤 명예총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시대를 사는 여성들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이태영 박사로 대변되는 내 윗세대의 여성운동은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권익 신장의 차원에서 법을 바꾸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능력과 역할이 남성보다 뒤떨어지면 차별을 받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남성들의 논리에 부닥쳐 여성과 차별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건드리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내 세대에 와선 과연 남녀의 역할 차이가 선천적인 것이냐는 문제를 말 그대로 들춰내고 쑤셔대기 시작해 남녀 역할의 차이는 ‘만들어진’ 후천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처럼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으로 여성문제에 접근하게 된 데는 과학 발전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먼 파워’라는 구호 속에 역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하는 지금, 다시 새로운 여성운동의 논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여성학의 위기도 종종 얘기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여성학 자체가 소진됐다거나 여성학이 학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기에 본질적인 위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여성학의 위기 역시 인문학의 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극복 대안으론, 복수전공제를 실시해 직업과 연결되는 고리를 찾고, 남녀평등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국력 신장과 사회문화 선진화 등의 방향으로 여성학의 논의의 물꼬를 새롭게 트는 방안이 있겠다. 또 남성 지배집단은 힘의 문화 때문에 자연과 공존하지 않았기에 생명여성주의, 즉 에코페미니즘을 강화하고, 국가와 사회의 철학적 가치관에 ‘통합사회’로 가는 것을 심도 있게 일원화하는 작업을 여성학이 해야 한다.”
그는 특히 지난 2006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되면서 차별 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로 넘어감에 따라 남녀차별금지법이 폐지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인권을 다룬 이 법에 대해 “여성문제는 보편적인 인권문제를 넘어 차별화된 시각으로 해결책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암암리에 대두되는 역차별 논리에 대해선 “여성이 인간답게 살아갈 출발점에 이제야 섰는데 마치 종착역에 온 것처럼 사회가 법석을 떤다”고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역사는 반동이 있어 진보와 보수를 되풀이하며 굴곡을 겪게 마련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성들의 의식과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한 위기로 주저앉는 일은 없을 것”이란 단호한 격려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