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이, 다시 모였다. 웃고, 뒤집고, 놀자며 여성의 욕망을 아는 잡지 ‘이프(IF)’를 세상에 내놓아 많은 여성들이 지닌 개개인의 욕망을 일깨웠던 그 언니들.
연말파티 때면 코르셋만 입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언제 어디서든 자매애로 똘똘 뭉쳐 그 어떤 ‘사단’ 앞에서도 천하무적이었던 그 언니들.
그들이 힘겹게 공적 영역에 진출해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싸우고 일상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한 덕에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우리 세대가 한 발짝 유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모습을 감췄지만 10년 전 창간했던 때를 떠올리며 지난 21일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이프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현재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는 유숙렬, 엄을순 언니부터 여전히 한 미모하는 김신명숙 언니, 전 편집장이었던 정박미경 언니, 창간 당시 마케팅을 맡았던 김영란 언니, 늘 소녀 같은 모습의 이유명호 언니 등 수많은 언니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유숙렬 대표는 “이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모였다”며 행사의 취지를 짧게 설명했다.
살아남기 위해 모인 언니들은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며 혹은 술 한 잔에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프를 거쳐 우먼타임스, 여성신문에 이르기까지 여성주의 매체 기자로 20대 전부를 보낸 나에게 여성주의는 삶과 싸우며 투쟁하는 방법이 아닌 진정으로 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일깨워주었다.
그 덕에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이, 여성주의자가 되는 첫 발걸음임도 알게 됐다. 중국 문학가 루쉰이 ‘고향’을 통해 “희망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아서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언니들이 걸어온 길은 내게 희망이 되어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 숨을 불어넣어주길 기다리는 이 땅의 여성들이 있다. 이젠 길이 끝난 것 같다고 무너지기도 하고, 더 이상 방법이 없지만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펄럭이는 여성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이 같은 여성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어갈 수 있는 언니들의 파티가 절실한 요즘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 언니들의 모임이 이어진다. 이번 달 30일에는 홍대클럽 제인스그루브에서 여성주의자들의 파티, ‘무아지경’이 열리고, 같은날 인천여성의전화에서도 ‘여전사의 날’이라는 행사명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열릴 수 많은 언니들의 파티가 해를 거듭해도 부디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