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는 학교에서 어발이가 가장 자신있게 잘하는 일이 있다. 바로 젓가락질이다. 자기반에서 자기만큼 젓가락질 잘하는 애를 못봤다는 것이다. 뛰어난 아이들이 모여있다는 학교를 두어달쯤 주눅들어 다니다가 뭔가 자기가 제일 잘 하는 일이 있나 둘러보게된 모양이다.

젓가락질을 잘하는 애들이 많지 않으며 검지와 중지로 젓가락을 움직일줄 아는 아이는 한반에 몇 명이 안되다나. 거의 다가 포크질하듯이 젓가락으로 반찬을 찍거나 수저처럼 뜬다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집는다’는 표현을 쓸수없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렸을 때 젓가락질 못한다고 엄마한테 얼마나 구박 받았는지 모른다고 은근히 항의를 해왔다.

젓가락질 잘하는 것도

‘희귀장점’

그러다 보니 큰애와 작은애가 어렸을때 무엇때문에 엄마한테 가장 많이 혼났는가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작은애의 경우는 단연 젓가락질 제대로 못하는 것하고 신발 짝 제대로 못 맞추는 것이었다는데 쉽게 합의했다. 작은애는 늘상 왼쪽과 오른쪽 신발을 구분하지 않고 신고 다녔고 나는 이를 유난히 못 참아했다. 아이가 넘어질때마다 신발짝을 제대로 신었는가부터 확인했고 대개는 왼쪽과 오른쪽 신발을 바꿔 신어서라고 야단을 쳤다.아이는 왼쪽 오른쪽 신발의 모양에 차이도 없고 길거리 돌뿌리 때문이거나 헛눈을 팔았기 때문인데도 엄마가 토끼눈을 해가지고 야단쳤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신발의 모양새를 구분 못하는것, 그리고 신어야 될 쪽 발에 신지 않는 모든 것이 ‘주의력이 없는 아이’, ‘적당히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아이’의 징후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그렇게 큰다면 걱정이었다. 자로 잰 듯이 꼼꼼하고 반듯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제 신발짝은 맞춰 신고 젓가락질은 제대로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꽤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요?’라는 물음에 나는 별로 할말이 없지만 비법 아닌 비법을 이야기하라면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신발 제짝을 자기가 알아서 찾아 신는 것, 그리고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법, 아니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이야기 해 버려야 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거나 신발을 신겨 주는 일을 가장 덜 했거나 가장 빨리 손을 뗀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능한한 빨리자기 손으로 밥을 떠먹고 가능한 한 빨리 자기 눈으로 제짝의 신발을 찾아 신도록. 급히 외출할때 조차 아이 신발을 찾아 신기기 보다는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기들이 알아서 신도록 버려두었다. 그래서 난 친절하지 않거나 ‘나쁜엄마’이다.

실제로 어발이는 “엄마는 최악이야”가 입에 붙었다. 그것도 모자라면 “우리 엄마는 역시 최악이야”로 나간다. 물론 이에 대해 나도 지지않고 엄마를 최악이라고 부르는 아들 또한 최악이고 또 죄악이라고 응수하지만(‘최악의 엄마와 최악의 아들’에 대해 언젠가 쓸 수 있기를). 그래서 아이들은 빨리 제 일을 잘 알아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것 같다. 우리 엄마들은 너무 마음이 좋아 아이들이 서툴게 이리저리 꼼지락 거리는 것을 볼 수 없어 하고 “내가 몸 한 번 더 움직이고 말지”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고 만다.

어발이가 다니던 중학교에 기가 막히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었다. 난공불락의 수석을 독차지한. 전과목에서 한 두 개 틀리는. 그런데 그 아이는 운동화끈도 제대로 못 매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발이가 와서 “○○는 천재인가봐” 그러다가 “○○는 불가사의해. 어떻게 운동화끈도 못 매면서 시험은 그렇게 잘 보는지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학교에서 운동하다가 운동화끈 풀리면 매지를 못해 쩔쩔매는 전교수석을 본다는것은 애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겠지만). 작은일에 부주의한듯한 사람들 중에 천재가 많으니까 맞는 말인지도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어머니가 운동화끈도 매주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확인은 안해 봤지만). 아들이 수석만 한다면 운동화끈 아니라 무엇은 못 매주겠느냐고 생각하는 엄마도 많을지 모른다.

중3이 다 끝나가는 날 학부형 몇 명이 모일 일이 있었다. 어머니들이 모이면 전교수석하는 아이가 늘 화제에 오르고 그 아이의 어머니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화제는 수석하는 아이로 옮겨졌다.

운동화끈도 제대로 못매는

‘수석지체부자유’

그런데 한 장난꾸러기로 소문난 한 아이의 어머니가 갑자기 수석하는 아이 이름을 대면서 “○○는 지체부자유아라면서요?”그러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학부형들이 모두 눈이 둥그레졌다. “ 우리 아이더러 ○○처럼 공부좀 잘해보라”그랬더니 “내가 운동화끈도 못매고 수석하는게 좋아요? 아니면 운동화끈 제대로 매고 공부 좀 못하는게 좋아요?”그러더라는 것. 엄마들은 폭소를 하고 말았다. “역시 ○○답다”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운동화끈도 못매는 아이를 말 그대로 지체부자유아라고 곧이 곧대로 생각한 엄마에 대해서도.

엄마 지성으로 국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극성 엄마들이 짠 과외팀 덕분에 중학교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우등상을 받고 엄마의 극성이 약효를 발휘 못하는 고등학교 가서는 중간치로, 그리고 대학가서는 숫제 대리시험 성적도 마다않는 아이들. 그리고 사회에 나간다면….

이제부터라도 좀 덜 친절한 엄마가 되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제 앞길을 자기가 가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성공이라고 한다면. ‘젓가락질 잘하는 아이’라는 제목부터 써놓고 글을 쓰다가 ‘나쁜 엄마가 성공한’로 제목을 바꾸기로 했다. 엄마들이 믿어줄지 모르지만. ‘나쁜 여자’ ‘나쁜 아내’까지는 그래도 생각을 해보겠는데…. ‘나쁜 엄마’만은 용기를 내기가 힘들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나쁜엄마의 반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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