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발이가 16번째 생일 선물로 샌드백을 사달라고 했을 때 나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어발이에게 샌드백을 생일선물로 사주어야 할 것 같다. 열여섯의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풀 데가 샌드백치는 일밖에 없다면.

지난 토요일. 삐삐를 압수한지 일주일 만에 다시 어발이의 힙합바지를 압수하게 되었다. 웬 압수(?). 귀가 시간을 안지키는 일은 삐삐 압수와 함께 졸업하기로 약속했는데 1주일도 안되어 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비슷한게 아니라 더 당황스런 일이었다. 월요일이 생일이니 토요일에 학교가서 미리 친구들한테 턱을 내야 한다고 용돈을 엄마 아빠 모두한테서 얻어 학교로 갔다. 수업 끝나고 점심은 자기가 사고 오후에는 각자 돈을 모아 영화를 보러간다나. 거기까지야 의례적인 일이었다. 다만 저녁 8시에는 꼭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영화표 예매를 깜박하는 바람에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게된 모양이었다. 귀가시간으로 약속한 8시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고 전화를 했으므로 그것은 납득할만한 처사로 넘어가기로 했다. 영화를 보고 10시 10분 전에 종로에서 전화가 왔다. 곧 버스를 타게되었다고. 종로에서 우리집까지는 많이 걸려야 30분 거리인데 10시 30분에도 11시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11시 20분쯤에는 같이 영화 보러간 친구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비밀인데 실연당한 아이가 있어 위로해 주느라고 늦는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혹시 실연당한 아이가 어발이인가요?’했더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커플 안 만들기 운동’ 벌여야 할 판

어발이는 12시가 다 되어 힙합바지에 러닝차림으로 알코올 냄새까지 풍기면서 돌아왔다. 이럴 수가!

“아니 너 술 마셨어?”

“예.”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하다 말고 나는 마치 힙합바지가 어발이 음주의 공모자인 양 ‘이제 넌 힙합 바지를 입을 자격이 없다’고 방금 벗어놓은 힙합바지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사연인즉슨 친한 아이들 여섯이서 점심으로 생일 파티를 하고 2명이 과외 있다고 빨리 가고 여학생 1명을 포함한 넷이서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버스를 탈려고 하는 순간 한 명이 어발이의 어깨를 잡아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넷이서 조용한방이 있는 곳으로 갔다.(이런 곳이 종로에 수없이 많은 모양이다.) 이야기가 잘 안 나와 맥주를 시켜 마시다 이야기가 심각해지면서 소주까지 마시게 됐다고.

이런, 요것들이 벌써 어른 흉내야. 도대체 열여섯 일곱살짜리들에게 그토록 심각한 이야기가 뭐겠는가? 어발이 녀석은 계속 심각한 이야기였다고 입을 떼지 못했다. “너 혹 실연당했니?”그랬더니 눈이 둥그레졌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팔을 잡아끈 친구가 반에서 거의 맨 먼저 커플을 맺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얼마전 자기 여자 친구한테 중대한 고백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애는 네가 아니고 어발이. 목하 고민중이던 차에 어발이 생일 파티에 따라 나와서 고민을 털어 놓아버린 것이다.

황당한 어발이. 이렇게 해서 그들은 새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의 여러 고민과 좌절을 털어 놓고 술을 마신 모양이다. 한때 교내 석차 한자리를 맴돌던 아이들이 학급내 두자리 석차의 성적표를 받아쥐고 받은 스트레스, 반에서 함께 공부하게된 여학생들과의 거리설정의 어려움 그리고 그 나이의 고민들. 거기다 대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고작 “그래 내가 뭐랬어? 너희들 주제에 커플이 뭐냐? 커플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 줄 이제 알았어? 진작부터 커플 만들기 안 하는 운동을 하랬잖아?”그런 소리 정도였다.

그러다가 몇 가지를 약속받았다. 학교가서 커플 안 만들기 운동하는 일, 약속시간에 귀가 할 수 없으면 일이 생겼을 때 바로 전화하기. 힙합 바지만 입으면 껄렁해지고 싶은 모양이니까 힙합바지를 없애는 것. 이참에 눈에 거슬리던 일들을 모두 청산해 버린 셈이다. ‘사악한 엄마!!’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 왜 태어났니…’가 생일 축하곡

오후에 낮잠자고 일어나 보니 대머리가 된 어발이가 현관을 들어섰다.“ 어떻게 된거니?”

“이발하고 왔어요.”

“아니 너 머리를 박박 깎았잖아?”

“친구들한테 나 손대지 말라고.”

“뭐라고?”

그러고 보니 어발이는 중2때인가도 한 번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린 적이 있다. 내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아이는 아인가봐. 자기 통제가 그렇게 어려운가보지. “그럼요. 30살이나 되면 몰라도.”

20대 중반에 들어선 큰애가 중얼거렸다. 자기 나이에도 자기통제가 어렵다는 것을 은근히 내비치고 싶은 모양이다.

“자기통제가 서른이면 될 것 같니? 쉰에도 힘들어.”

나도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으므로.

혹시 학교가서 머리 밀었다고 얻어 터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데 어발이가 다른 걱정을 늘어 놓았다. 학교가면 반 아이들이 몰려들어 북치듯이 자기를 치면서“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이 험한 세상에 왜 태어났니….”를 생일 축하곡에 붙여 부르면서 케이크로 까까머리를 감길 거라고. 아침에 눈 뜨면서 이 광경을 상상하다가 배꼽을 잡고 말았다.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세는 나이 17살로 할까 만으로 해서 16살로 할까’했더니. 이팔 청춘을 우기는 어발이에게 빨리 샌드백을 사주는 일이 남았다. 넘치는 에너지와 누르는 교육 속에서 샌드백이라도 칠 수밖에.

P.S. 이 교육일지를 읽는 어느 후배가 “어발이는 정말 사건을 잘 물어오는 아이같아요.”’그랬다. 고1로 산다는것이 곧 사건 속에 사는 것일지도. 이런 교육일지를 쓰는 것을 어발이가 알면 엄마 도와준답시고 더 사건을 물어올까? 아니면 이럴 수없어 하면서 입을 다물어 버릴까? 짐작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쪽도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일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다.(여성신문 배달을 집에서 학교로 바꿔 놓았다.) 나중에 알고 사생활 침범이라고 항의해 오면 너무 바빠서 일기를 못 쓰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일지를 써 준 것이 뭐 나쁘냐고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