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 사건
성폭력 사건 특성상 정말로 피해를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법정에서 아무리 비공개라고 해도 재판부, 검찰, 변호인, 속기사, 사무관, 실무관 등의 앞에서-거기다 때에 따라서는 가해자인 피고인이 있는 앞에서-증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과 고통을 주는 것임이 당연하다.
2008. 6. 12. 선고 2007다64365 판결은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공무원)에 의해 2차적인 피해를 입었음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이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나이 어린 학생이고 가해자는 수십 명에 달해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는 등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경찰이 위법한 2차 가해를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 측은 ①경찰이 기자들에게 피해자의 피해 사실 및 인적사항을 누설한 점 ②사적인 자리에서 제3자에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누설한 점 ③여성 경찰에 의한 조사 요청을 묵살한 점 ④범인식별실 미사용의 점 ⑤진술녹화실 미사용의 점 ⑥피해자의 보호조치를 위반한 점-가해자의 가족이 피해자를 욕하고 협박하는 사건이 발생 ⑦피해자에 대한 밤샘조사, 식사와 휴식시간 미제공한 점 ⑧감식실 담당 경찰이 피해자에게 ‘특정 지역물을 다 흐린다’는 식의 비하 발언을 한 점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1심은 위 ①, ②의 행위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했고 항소심에서는 이에 더해 ⑤, ⑧의 행위에 대해서도 배상책임을 긍정했고 이 결론은 대법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판결은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 중 국가에 의한 가해에 대해 기준을 제시하고 배상을 명한 최초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수사기관 혹은 공소제기 및 유지기관, 재판기관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해선 법원이 그동안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 즉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하거나 “그 당시의 자료에 비추어 경험칙이나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그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시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경찰의 위법행위에 대해 이와 같은 엄격한 기준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적인 불법행위 기준을 사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는 재판이나 공소제기와 같은 특수성이 있지 않은 직무행위에 대해선 그 주체가 수사기관인 경우에도 엄격한 기준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검찰이나 법원에도 마찬가지의 잣대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상 판결을 전후로 국가의 2차 가해와 관련된 여러 사건이 진행됐거나 진행 중에 있고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범죄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대상 판결은 “경찰관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범죄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의무가 있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나이 어린 학생인 경우에는 수사 과정에서 또 다른 심리적·신체적 고통으로 인한 가중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직무상 의무는 당연히 경찰관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피고인 측의 변호인, 언론 등 사건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의무라고 할 것이다.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경찰은 범죄 피해자 보호규칙 등을 제·개정하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 매뉴얼, 범죄 피해자 대책실, 피해자 보호위원회 등을 도입했고 검찰 역시 성범죄 수사, 공판 관여 시 피해자 보호에 관한 지침 등을 바탕으로 범죄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제도에 대한 연구,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번 자살사건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