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윤이상’ 박영희 재독 작곡가
‘제2의 윤이상’ 박영희 재독 작곡가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1.08.12 11:54
  • 수정 2011-08-12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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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은 하나의 원…동서양이, 과거와 현재가 함께 돌아가죠”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타령VI’아시아 초연…‘여성 정체성’ 강하게 표출
“윤이상과 비슷하면 이미 끝난 것…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소리’ 창조”

 

“‘타령’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신세타령 같은 넋두리도 있지만 무엇인가 기운찬 느낌도 있죠. 바로 우리 음악을 관통하는 신명의 힘이죠. ‘타령’ 안에 우리의 모든 감정을 함축적으로 넣을 수 있고, 그 짧은 곡 안에 우리의 삶 전체를 담으려 시도했죠. 한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일하는 모습, 즉 처음엔 해 뜨는 것처럼 조용히 시작해 점차 활력적으로 움직이다 이윽고 해가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것이죠. 완성된 5개의 타령 시리즈 중 이번에 연주된 ‘타령VI’는 꽤 힘있고 신나죠.”

지난 13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여덟 번째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초청돼 ‘타령VI’의 아시아 초연으로 주목받은 재독 작곡가 박영희(66·사진)씨. 건강하고 소박한 모습이 인상적인 그는 유럽에선 이미 ‘제2의 윤이상’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은 대가다. 그러나 국내 음악계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기에 “(한국과 거의 네트워크가 없는데도) 용케 내 작품만 보고 기꺼이 초청해준 음악제의 정명화·정경화 두 예술감독의 ‘용기’에 마음으로부터 고맙다”는 말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독일어권 ‘첫’ 여성 작곡과 교수, 정년퇴임 때 주정부로부터 공로메달

그의 앞엔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심심치 않게 따라붙곤 한다. 여성으로선 독일어권 국가 최초의 음대 작곡과 교수(1994년 브레멘 국립예술대 주임교수),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 75년 역사상 최초로 오케스트라 곡을 위촉받은 여성 작곡가 등의 면면이 그것이다. 서울대와 동대학원 작곡과를 졸업한 후 29세 때 “모든 게 변화하는 힘든 시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각오로” 감행한 독일 유학길도 국내에선 처음으로 독일학술교류재단(DAAD) 장학생으로 선발됐기에 가능했다. 올해 3월 정년퇴임한 그에게 브레멘 주정부는 현대음악연구소와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세계 각지의 주요 현대음악제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공로를 기려 공로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반면  독일어권 국가에서 작곡과 여성 정교수의 수는 이제 2명으로 줄어들었다.

“1980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위촉받아 작곡한 곡 중 하나가 ‘소리’였어요. 어떤 친구가 얘기했듯 ‘윤이상과 비슷하면 이미 끝난 것’이란 각오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나름의 소리를 창조했어요. 당시 독일에서 TV를 통해 일주일 내내 응시했던 5·18 광주항쟁이 그 주제였어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참 고민했죠. 민중이 처절히 스러져간 모습을 쓰면서 100여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단을 통해 격정적이고 웅대하면서도 슬픈, 그러나 결국 ‘희망’으로 막을 내리는 그런 소리를 담았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졸업 후 스위스 보스윌 세계작곡제, 파리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 독일 하이델베르크시 선정 여성작곡가상 수상 등 유학 6년여 만에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 그의 작품성의 원형은 무엇일까. 혹자는 동양사상과 한국철학 그리고 그리스신화를 접목한 그만의 독특한 융합적인 작품 세계를 꼽는다. 60여 곡 제목의 70% 이상이 우리말일 정도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바로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그의 평소 신념일까. 두 시간여에 걸친 그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기자의 ‘감’은 동서고금과 우주의 삼라만상을 하나의 거대한 원 속에 투영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순환구조를 성찰하는 예술가의 ‘눈’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자면 “예술가는 그 흐름 속 어느 한 특정 지점에 머물러 그를 목도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2006년 7월 슈투트가르트 세계현대음악제에 초청돼 파리광장에서 초연되며 주목을 끈 그의 창작 오페라 ‘달그림자’가 그렇다. 그가 5년여 심혈을 기울여 선보인 첫 오페라인 ‘달그림자’는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를 토대로 7장으로 구성돼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의 인생 말기를 표현하고 있다. 

“내 뮤즈는 안티고네”…고대 비극에 휴머니즘·욥기·불교 함께 투영

“오이디푸스 안엔 우리의 도교정신도 들어 있습니다.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돌아갔으면’이란 갈구는 도교뿐 아니라 구약의 욥기, 불교에도 다 있는 얘기죠. 근본정신이나 근본 존재에 대한 고민은 동서양이 다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내 음악은 동서양의 융합보다는 이처럼 근본은 다 같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시도죠. 옛 송나라 음악이 성균관 제례음악에 머물러 있고, 옛 우리 음악이 일본 저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식으로, 문화는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흘러가죠. 그러면서 흔적을 남기죠. 난 그 ‘흔적’을 쫓으며 밑바닥은 같은, 근본 자체를 찾아 헤맵니다.”

그의 음악적 뮤즈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다.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권력자에 대항한 휴머니즘의 시초”이자 인간으로서의 근본적 슬픔과 상흔을 씻어나가는 구도의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페라 안에서 안티고네 관련 장을 따로 만들고 그 가사를 한국인이 맡게 함으로써 불교적 색채를 가미하기도 했다.

4년여의 작업을 통해 완성을 서두르고 있는 ‘높고 낮은 빛’ 역시 이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인간의 영성과 기적에 대해 성찰 중이다. “몇 천 명이 단 하나의 진실을 바라보며 웃으며 순교할 수 있는 용기”에 전율하는 그는 이를 통해 “어두움에도 빛이 있고, 가장 밑바닥은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이를 통해 도교와 서양 사상을 음악으로 함께 표현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그의 이 곡은 내년 연말 독일 뮌헨에서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비올라의 이중 협주곡 형식으로 초연될 예정이다

그는 예술가로선 드물게 중성을 고집하기보다 ‘여성’ 정체성을 강하게 내세운다.

“내가 ‘여성’이란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이를 다행으로 생각해요.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이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동양인이고 ‘여성’이기에 이중 차별 받지 않았느냐고요? 누가 차별했더라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바쁘게 몰입해 살긴 했어요(웃음).

여성이야말로 그 안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조화롭게 내재하고 있고, 이를 굉장히 큰 에너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여성은 인간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인정하든 안 하든 바로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참고로 전 아이가 없지만요.”

이런 맥락에서 그는 ‘신사임당’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기존의 현모양처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부모, 남편, 아이들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존중받아 일찍부터 자신의 끼를 한껏 발휘해온 독립되고 성숙한, 현인에 가까운 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신사임당의 이지적인 글들은 그를 감동시켰고, 1977년 고희를 맞은 어머니를 위해 신사임당의 한시 ‘사친(思親)’을 주제로 ‘만남’을 작곡했다. 이듬해 보스윌 세계작곡제에서 1등을 수상한 이 곡은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비올라가 가락을 연주하고 첼로가 장단을 맞추는 가운데 대관령을 넘어 시댁으로 향했던 신사임당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담았다. ‘대관령’이란 공통 키워드로 의미심장하게 이번 음악제에서도 연주됐다.

그의 음악과의 조우는 “곁눈질”에서 시작됐다. 충북 청주 출신인 그는 여섯 살 때 피아니스트 신수정씨의 어머니가 경영하는 유치원 담장 너머로 신씨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서 ‘천사’를 연상했다. 열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팔남매 중 일곱째인 그를 유독 사랑했다. 그를 어르며 자작곡에 가락을 붙여 불러줌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음악”이 주는 기쁨을 일찍이 알려줬다. 장이 열릴라 치면 으레 그를 데리고 나가 배비장굿 등 짧은 판소리 가락을 듣게 해줬다. 그는 지금에서야 “아버님은 내게 정을 붙이시면서 그렇게 해방 격변기를 살아내신 것 같다”고 하지만 그 사랑 덕에 “‘난 참 근사한 아이야’란 생각이 꽉 박혔고, 때문에 재주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으니, 무의식 속에서라도 어린 시절 아버지께 받은 그 완벽한 사랑 때문에 그 힘으로 여기까지 버텨왔다”고 고백한다. 이런 아버지를 잃자 슬픔에 겨운 그를 위로하기 위해 당시 사범대를 다니던 둘째 언니가 피아노를 가르쳐줬고, 빳빳한 종이에 건반을 그려 넣은 종이 피아노를 접어 가지고 다니며 동요를 작곡하면서 막연히 작곡가로서의 삶을 그리게 됐다.

“아버지의 자작 가락이 내 음악의 자산”

그는 음악을 하면서 당시 스승이던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세계적인 작곡가 클라우스 후버로 ‘음악가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지멘스’(Simens)상을 2009년 수상했다. 그와 남편은 “이제까지의 삶이 다르기에 음악 세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철저히 실제 삶에 실천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객체”로 불간섭이 원칙이라 독일 집에서는 1층은 그가 쓰고 2층은 남편이 쓰는 구조로, 이탈리아 집에선 한 집에 아예 대문을 두 개 만들어 “따로, 또 같이” 산다.

음악 인생 반세기를 살아내며 그에게 남은 꿈의 결정체는 무엇일까.

“유럽에서도 여성이 음악가로 자리 잡기는 여전히 힘들어요. 동생이나 오빠의 그늘에 가려 뛰어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잊혀져간 모차르트나 멘델스존의 누나, 여동생의 얘기가 아주 먼 얘기는 아니죠.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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