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에게 상습 성폭행 당한 그녀의 선택은 ‘살인’이었다

법무부 형사법개정특위에서 형법의 ‘존속살해죄’(제250조 제2항) 조항을 삭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이 조항의 삭제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형법은 ‘존속살해죄’ 규정을 두어 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 존속을 살해하면 일반 살인죄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효 사상을 보호하고 패륜 범죄를 엄벌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존속살해 조항은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

‘존속살해죄’ 삭제를 두고 논란이 뜨거운 것을 보면서 일본에서 ‘존속살인죄’가 위헌이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한 여성의 기구한 인생이 떠올랐다.

1968년 10월 5일 오후 10시쯤 아이코(가명·당시 29세)는 이웃에게 “아버지를 끈으로 목 졸라 죽였다”고 한 후 쓰러진다. 너무 놀란 이웃은 경찰에 신고했고, 아이코는 ‘존속살인죄’ 용의자로 긴급 체포된다. 일본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야이타(矢板) 친부 살인사건’의 시작이다.

놀랍게도 검찰 조사결과 아이코는 14세부터 친아버지 다케시(가명·당시 52세)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 당해왔고, 그녀와 다케시 사이에는 5명(이 중 2명은 어릴 때 사망)의 자녀가 있는 것이 밝혀졌다. 아이코가 다케시를 죽이게 된 계기는 아이코가 세상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25세가 된 아이코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쇄소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상황을 아이코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삶이란 이렇게도 밝고 즐거운 것인가. 직장 동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연애, 데이트,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무서운 아버지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직장에서 29세가 된 아이코는 7년 연하의 직장 동료와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 다케시는 아이코를 감금하기에 이른다.

감금 생활 10일째 아이코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도 다케시를 죽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해 다케시를 목 졸라 죽인다. 아이코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변론했다. “친아버지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고 희망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 상황에서 살인은 어쩔 수 없는 행위다. 정당방위 아니면 긴급 피난으로 봐야 한다.”

지난 1969년 5월 29일 1심 법원은 “존속살인은 법 앞에 평등을 선언한 헌법 제14조 위반으로 피고의 범행에는 일반의 살인죄를 적용한다. 과잉방위라고 인정되나 정상을 참작해서 형을 면제한다”고 판시했다. 검찰 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지난 1970년 도쿄 고등법원은 “14세 때부터 부부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살해한 것은 친아버지다. 그것도 만취 상태에 있는 아버지를 살해했기 때문에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아이코에게 ‘존속살인죄’를 적용,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아이코는 바로 상고했다. 1973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일본재판 사상 처음으로 형법의 존속살인죄(제200조) 규정에 대해 헌법 제14조의 ‘국민의 법 앞의 평등’에 위배한다고 위헌 판결을 했다. 14명의 재판관이 모두 일치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8명의 재판관은 존속살인죄를 일반 살인죄보다 가중 처벌하는 것 자체는 위헌이 아니지만 존속살인죄의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에 한정돼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6인의 재판관은 일반 살인과 구별해서 존속살해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헌법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했다. 합헌이라고 주장한 재판관은 1명 뿐이었다.

아이코에게는 ‘존속살인죄’가 아닌 일반 살인죄가 적용돼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최고 재판소가 ‘존속살인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자민당의 반대로 이 규정은 그대로 유지되다 20년이 지난 1995년에야 폐지됐다. 한 여성의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삶이 일본에서 ‘존속살인죄’를 폐지시켰다. 아이코는 그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생존해 있다면 고희를 맞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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