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변신이 그렇게 시시한 일이야

요즘 아이들과 관련하여 ‘자존감’이나 ‘자기주도’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마음이고, 자기주도는 자기 일에 능동적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부모들이 많아서인지 이를 위한 방법이나 조언이 담긴 책도 꽤 많고 잘 팔리기도 한다. 자존감과 자기주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잘 알며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될까? 초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경로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해 알려면 먼저 거울을 본다. 다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을 점검한다. 또 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람들의 평가를 참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다만 아이는 자신을 묘사하는데 주로 신체나 활동과 관련된 구체적 용어를 사용하고, 나이가 들수록 심리적이거나 내면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음은 자신의 변신한 모습에 놀란 그레고리 샘슨에 대한 이야기다. ‘변신’(로렌스 데이비드 글, 델핀 뒤랑 그림 / 보림)에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몸이 딱정벌레로 변해 어리둥절하고 당황하는 그레고리 샘슨이라는 아이가 나온다. 그레고리는 깜짝 놀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본다. 더듬이, 털이 난 여섯 개의 다리, 진한 밤색 몸통의 딱정벌레가 거울 속에서 그레고리를 쳐다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레고리가 딱정벌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몰랐다면 자신을 ‘딱정벌레’로 변했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레고리는 셔츠에 팔이 들어갈 구멍이 두 개밖에 없어서 구멍을 내서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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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는 아빠와 엄마, 동생이 있는 부엌으로 들어가 자신이 딱정벌레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빠는 그렇다면 자기는 하마라며 웃는다. 엄마는 신문을 보면서 그레고리가 항상 귀여운 애벌레였다고 말하고, 동생은 어제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그레고리가 자기는 딱정벌레가 되었다고 아무리 여러 번 이야기해도 가족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통 사람들은 일상적인 것, 늘 보아오던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식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표정을 살필 때는, 그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때이다. 즉 사람들은 낯설거나 이상한 모습에 시선이 끌리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레고리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딱정벌레로 보였지만, 식구들에게 그레고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고, 특별히 달라진 행동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 발밑에 졸졸졸 기어가는 벌레를 본다. 그레고리는 혹시 그 중에 새 형제나, 새 엄마, 새 아빠가 있을지 몰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장 친한 친구 마이클은 식구들과는 달리 그레고리가 변한 것을 단박에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걱정스레 아프지는 않은지 물어본다. 그레고리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내가 누구인지는 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둘은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레고리가 무슨 딱정벌레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나는 누구지? 이런 질문은 답하기도 어렵지만 생각해 내기도 쉽지 않다. 그레고리처럼 스스로가 봐도 낯선 모습으로 변했다거나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나 드는 의문이다. 열심히 잘하고 있을 때는 생각나지 않는 질문이다. 이렇게 보면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낯설게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평소와 달라야 낯설게 보는 것이 가능해 진다. 가령 시험을 잘 보던 아이가 시험을 망치거나, 부모 말을 잘 듣다가 어깃장을 부리거나, 숙제를 하지 않던 아이가 열심히 하면 ‘어, 웬일이야?’ 하면서 아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이것 또한 잘하는 것을 못하기가 쉽고, 못하던 것을 잘하기는 어려워서 낯설게 보려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빠르다. 즉 건강할 때보다 아플 때 건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아마도 엄마가 매니저처럼 미리 할 일을 정해주고 알려주어서 실패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고리는 자신이 원래 벌레였는지 마이클에게 물어본다. 마이클은 그랬다면 진작 알았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레고리는 벌레로 변한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살펴본다. 여섯 개의 다리로 수학 계산을 하고, 더듬이로 골대에 공을 넣기도 한다. 자신이 남들보다 다리가 더 많다거나 머리 위에 더듬이가 있다는 자각이 주도적으로 수학문제를 풀고, 골을 넣는 실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벌레 책을 빌려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딱정벌레에 대해 자세히 조사한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그레고리의 변화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의 변신이 그렇게 시시한 일이야? 그레고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변신을 몰라보는 것이, 자신이 사람이건 딱정벌레건 상관이 없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딱정벌레가 된 게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무룩해 한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아직도 딱정벌레라고 말한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재미있다면 계속 그렇게 생각하라며 전화를 걸면서 당근을 먹고 있다. 절망이다! 그레고리는 자기 방문을 “쾅!” 닫고 속이 상해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음을 꾹 참고 벽을 기어올라 천장에 붙어서 방을 내려 본다. 저녁이 되고 저녁을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엄마와 아빠가 그레고리의 방으로 들어온다. 천장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던 그레고리는 위를 보라고 말한다. 드디어 아빠의 눈에도 진한 밤색 몸뚱이의 딱정벌레가 보인다. 엄마와 동생 케이틀린에게도 변신한 그레고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제야 그레고리는 자신은 벌레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천장에 붙어있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평소 그레고리의 모습은 아니다. 가족들도 평소와는 다른 별난 행동을 보여야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조금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정도로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문을 쾅 닦고 들어가도 모른다. 그레고리처럼 천장에 올라가 붙어있거나 엉엉 우는 정도는 돼야 관심을 보인다. 아이의 변화가 시시해서도 아니고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매일 보는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습을 투영해서 바라본다. 그래서 가족의 변화는 다른 사람보다 늦게 발견하거나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그레고리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레고리는 자기에게 벌레 약을 뿌릴 것인지 물어본다. 엄마와 아빠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레고리에게 뽀뽀를 해주고 아침에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그레고리가 어떻게 변해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럼, 그레고리는 다시 사람으로 변신했을까? 끝까지 다 이야기를 해 버리면 동화책 ‘변신’을 읽을 아이나 부모들의 재미를 몽땅 빼앗아 버리게 되니까 여기서 마치는 것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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