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감각으로 밝고 긍정적 이야기 다루기도
실버연극은 노인의 문제를 다루고 노인을 위해 공연되는, 나아가 노인이 만드는 연극 모두를 말한다. 이전에도 치매나 황혼의 불륜 등 제한된 특정 소재로 만들어져 노인 관객층을 주요 대상으로 한 작품들은 종종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 대학로에는 노인의 일상과 사랑, 꿈을 주제로 한 폭넓은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작품들은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청소년과 대학생 등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최근 수년간 자생적인 몇몇 단체들이 실버연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실버연극제도 정기적으로 개최되면서 실버연극이 양과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거뒀다. 비교적 젊은 중년의 연출가와 극작가가 선보인 젊은 감각의 작품들은 노년의 삶과 사랑을 밝고 긍정적으로 비추는 데 일조했다.
한국 현대극에서 노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표현주의극의 대가 고(故) 이근삼(1929~2003) 작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 자신이 장년·노년기에 쓴 작품인 ‘낚시터 전쟁’ ‘막차 탄 동기동창’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등 10여 개의 작품은 노년의 병고, 소외, 고립 등의 문제를 비롯해 노인의 일상적 삶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뤘다.
위성신 연출가는 노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는 대표적인 연극인이다. ‘늙은 부부 이야기’와 ‘해질역’은 평단과 공연 애호가들로부터 호평 받은 대표작이다. 2009년 시작된 이래 꾸준히 실버세대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거창실버연극제도 있다. 올 6월 치러진 제3회 연극제에는 서울과 경기, 전북, 경남지역에서 10개 노인극단이 참여했다.
산울림 소극장의 경우는 ‘여성연극의 메카’라는 극장의 별칭에 걸맞게 여성 노인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노령화 시대에 노년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사랑의 감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가 대표적이다. 작품은 칠순이 넘은 원로 작가(윤대성)와 연출가(임영웅)가 만들어낸 작품인 만큼 불륜이나 남편들에 대한 비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남녀관계나 성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한국여성연극인협의회가 ‘고령화 사회와 연극’을 주제로 2011년 하반기 심포지엄을 연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실버연극의 현황을 살펴보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과 함께 실버연극이 어떤 연극적 기법으로 구현돼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 전문가들은 “실버연극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거창실버연극제에 출품된 다수의 연극은 ‘치매 노인’을 다룬 작품이 주류를 이뤄 소재와 주제가 제한돼 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더구나 연극계 내부의 ‘실버연극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겠나, 노인이 주인공인 작품을 하면 누가 보겠어’라는 식의 자조 섞인 반응도 여전하다.
원로 극작가 김영무씨도 연극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 역시 실버연극의 발전을 위해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실버연극은 일시적인 행사나 계몽극 수준의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며 “의미만 좋은 것으로는 부족하다. 관객과 예술적인 감흥을 교감하는 예술로 승화된 연극이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극작가들이 노인문제에 대한 주제와 씨름하면서 작품을 집필할 수 있는 여건 혹은 환경을 제공해서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연출가와 연기자들은 청력이나 시력이 약화됐을 뿐 아니라 기억력이 쇠퇴됐다는 점을 감안해 동선이나 발성법을 세심히 고려하는 등 구체적인 변화도 필수”라는 것이다.
연극은 심각한 사회문제의 최전선에 위치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노인문제에 있어서도 세대를 초월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풍부하게 개발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