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서적 출판 열풍

인문학 서적의 대우가 달라졌다. 몇 해 전만 해도 인문 서적은 초판 2000부를 소화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름 있는 해외 인문서의 경우 특별한 홍보 없이도 5000부가량씩 팔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문학 서적 열풍을 주도하는 것이 대부분 문학 출판사라는 점이다. 문학동네는 지난해 말부터 해외의 인문사회 고전을 번역해 소개하는 총서인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를 선보이고 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명저로 철학, 역사, 사회학, 심리학, 문학이론을 망라한다. 모리스 고들리에의 ‘증여의 수수께끼’를 시작으로 S 크라카우어의 ‘역사-최후 직전의 최후의 것’. 미셸 푸코의 ‘정신병과 심리학’ 등이 발간됐다. 자음과 모음은 국내 젊은 인문학자들의 비평서를 총서로 발간한다. 음악평론가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의 ‘로제와 함께 읽는 지젝’이 대표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인문학 시장에 진입해 양질의 인문서를 싹쓸이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웬만한 중견 작가의 신작도 초판을 다 팔기 어려울 만큼 위축된 순문학 시장의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인문학에 주목하고 있는 것. 일부 출판사들은 군소 인문 출판사들이 섭외 중인 인문서를 더 높은 가격에 계약하거나 젊은 필자들을 대거 데려가는 경우도 생긴다.

한편 인문 출판사들은 온·오프라인 강좌를 통해 활로를 모색한다. 역사 전문 출판사인 푸른역사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푸른역사 아카데미’라는 별도 공간을 마련해 미술사학자 노두성씨, 철학자 김수영씨,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씨를 비롯해 다양한 강사를 초빙해 강좌를 개최한다. 한길그레이트북스, 한길신인문총서, 인문고전깊이읽기 등 많은 양의 인문 고전 명저를 출간한 한길사도 파주 헤이리 북하우스와 서울 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인문강좌를 열고 있다.

서점의 위기는 오늘내일 거론된 이야기는 아니다. 인터넷 서점과의 대결은 물론 스마트폰이다, 전자책이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매체들도 오프라인 서점들을 위협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던 인문학 전문 서점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서울대 앞의 ‘그날이 오면’, 건국대 앞의 ‘인서점’, 성균관대 앞의 ‘풀무질’ 정도가 전부다.

인문학 서점은 강좌·독서모임 등으로 활로 모색

경영난에 시달리는 이들 인문학 서점은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1988년부터 20년이 넘게 한결같이 서울대 앞 녹두거리를 지킨 ‘그날이 오면’은 오직 인문사회과학 서적만으로 5만여 권의 장서를 갖춘 곳이다. 최근에는 초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과 경쟁하기 위해 홈페이지(www.gnal.co.kr)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학회 세미나, 서평대회, 저자와의 대화 등 학술행사와 독서 모임을 꾸준히 열면서 지식광장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10%를 할인해주는데 이 중 7%는 구입자 마일리지로, 나머지 3%는 양심수 후원금으로 적립한다.

한두 번 책과 관련한 이벤트에 참여해본 독자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그날이 오면’을 살리기 위해 손을 걷어붙인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지만 200여 명이 매달 CMS를 통해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한다. 2월 초부터는 책과 시사 현안을 주제로 한 라디오방송 ‘그날에서 책을 말하다’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데, 이 또한 서울대 학생들이 주축을 이룬 그날학회 회원들과 서울대 방송연구회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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