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여성의 권리와 엄마의 책임은 전혀 다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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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20대 초반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증에 시달린다는 한 청년이 물었다. “스님, 자아가 자꾸 쪼그라드는 것 같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라고.

스님이 답했다. “당신 아버지의 재혼 문제는 당신의 불안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그 사건(아버지의 재혼)이 없었더라면 자기 안에 감춰져 있는 불안의 씨앗을 몰랐을 테고, 만약 결혼 후 이를 알게 됐다면 그 책임을 아내에게 덮어씌웠을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이것을 깨달은 것이 앞으로 사는 데 유리한 도움이 될 것이다. 사이가 안 좋은 부모 사이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와 불안이 더 이상 불타지 않도록 끊임없이 마음 공부를 하라”고. 그러면서 팔십이 넘어서도 본인의 재주를 계속 쓰고 싶다면 퇴직 걱정 없고 백발이 늘어날수록 더욱 존경받는 스님이나 소박하나마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사를 직업으로 택할 것을 권한다. 농업은 여름 한철 해수욕장 장사 같은 인생살이에서 그래도 “묵은지처럼 푹 삭아야 제맛이 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5, 6년  반짝 인기 후 공허하게 방황하는 아이돌이나 친형과의 재산 다툼 끝에 “한 푼도 못 준다”며 가정사를 헌재까지 가져가겠다는 한 재벌 총수의 예를 들어 “이런 인격으로 어떻게 인생이 행복해지길 바라느냐”며 “인기, 재산, 권력은 다 자기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아무리 사소해도 들어주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

종교를 초월한 우리 사회 멘토로 정치, 사회, 대중문화계 등과의 “칸막이 없는” 네트워킹을 맺고 있고 또 그로 인해 번번이 이슈의 중심에 서곤 하는 법륜(59·사진) 스님을 만났다. 5월 3일 서대문구청 대강당 마룻바닥까지 꽉 메운 청중을 향해 대중 강연을 마치고 난 직후였다. 두 시간 동안 숨 쉴 틈 없이 진행되는 스님의 그 유명한 즉문즉설(卽問卽說) 법문 방식의 강연을 접하면 복잡한 인생사의 가지가 하나씩 정리되면서 한순간 참 단순 명료해진다. 그래서 순간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대단한 치유의 마력이 있다. 그 자신도 “우리의 마음이 맑고 밝고 가벼워야 행복의 근원에 닿을 수 있다”고 정리한다.

올 초 봄 백강을 마치고 곧바로 5월부터 여름 백강에 들어가 전국을 누비는 스님의 주제는 ‘희망 세상 만들기’다. 식사 한 끼를 위한 여유도 없이 이동 사이사이에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이지만 정작 스님은 “일하는 마음으로 다녔으면 벌써 지쳐 쓰러졌을 테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니니 힘이 난다”고 말한다. 기저엔 “민심은 천심”, 즉 백성이 감동해야 하느님이 도와준다는 신념, 여기에 우리의 상황이 하늘의 힘으로 도와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현실 인식이 있다.

그래도 기자에겐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청중의 질문이란 게 심오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때론 율사에게로, 때론 의사에게로 가서 전문적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은데 굳이 공개적으로 스님의 현답을 구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스님은 “들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재개발 문제, 공기관 해직문제, 도박과 게임, 며칠 전엔 일본군위안부 활동가의 국가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하소연 등 별별 고민이 다 있다. 늘 그렇다. 절로 찾아오는 이들은 다 신도들이니 이미 마음속으로 스님에게 무릎 꿇고 얘기할 자세가 돼 있어 쉽지만 (내 강연을 듣는 이들은)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같으니 권위적 형식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해야 한다. 그래서 대화도 서로 놀이하듯 한다. 그러면서 이들의 아픈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며 필요하면 일정한 선에서 문제도 해결해준다. 위로해주는가 하면 잘못된 생각엔 따끔히 야단도 쳐준다. 이게 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수십 년간 개인 상담을 해온 경험상 “개인 상담을 할 때는 원리를 아무리 설명해줘도 자기 생각에서 못 빠져나오곤 하는데, 공개 장소에선 대중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확인받기에 치유의 반은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간혹 그래도 자기 아집에 빠져 있는 이에 대한 그의 처방은 파격적으로 간단하다. 청중을 향해 돌아서게 하고 청중 투표로 그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려준다는 것. 그만큼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은 치유의 첫걸음이다.

정토회·평화재단·좋은벗들·에코붓다 창설… 즉문즉설 희망 강연

지난해 펴낸 그의 저서 ‘엄마 수업’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여기서 그는 심성이 건강한 자식으로 키우려면 부모의 심리 안정이 가장 중요하고,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 다른 사람과 같이 맞춰 살 마음이 덜 돼 있으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고, 그래도 꼭 결혼하고 싶다면 자식을 안 낳는 게 좋고, 만약 그래도 자식을 낳겠다면 정말 그 아이를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강연에서도 직장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완벽히 잡으려 스스로를 괴롭히는 30대 엄마에게 그는 감연히 권했다. 여성의 자아실현을 위해 엄마의 책임을 방기할 순 없는 일, 당장 직장을 그만두라고 말이다. 반여성적 발언으로 읽힐 오해의 여지도 있지만 실제 그의 강연에서 부모로 인한 성장통과 불안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접하면 그의 발언의 무게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기와 엄마와의 관계에선 엄마의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 여성의 권리와 엄마의 책임, 이건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이 둘을 뒤섞어 여성운동을 한다면 그건 이기주의일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병아리도, 다람쥐도 다 잘들 성장해 새끼 낳아 잘 키우는데 왜 인간만 그게 힘든가. 순리를 잘 안 따르기에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이다. 자식이 성장하면 다른 동물들은 간섭을 안 하는데 왜 사람만 간섭해 성장장애를 일으키는가. 아이가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주고, 스무 살이 넘으면 냉정하게 독립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도 거치며 자연스럽게 ‘어른’을 준비하고 삶을 자기화할 수 있도록 지켜봐줘야 한다.”

그의 ‘원리’ 원칙은 엄격하다.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민족차별, 인종차별 등 불평등한 과거의 역사는 개선돼야 하는 것이 원리인데 여기에 무슨 진보·보수를 따지냐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불가에 귀의했음에도 독재정권에 대한 반정부 활동으로 구금돼 고문을 받고, 1996년부터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지원하는 데 매진하는 한편,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로 알려지면서 정치적으로도 주목받게 된 그의 삶을 자세히 소개했다. 온갖 복잡하고 미묘한 ‘세속’에 단단히 묶여 있는 수행자의 삶을 그 스스로 설명하듯 “인류의 문명 전환을 실행해간다”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뉴욕타임스에 얘기하고자 한 핵심은 미사일, 핵만 보지 말고 북한에 살면서 고통 받고 있는 2000만 주민에게도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고통엔 둔감하면서 자기  중심의 정치 견해를 중심에 놓으니 (진보진영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이슈화한다고, 보수진영은 대북 지원을 요구한다고 공격하는) 그런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권 개선, 난민 보호, 국군 포로 송환은 보수파의 일이고, 식량 지원, 장기수 북송은 진보파의 일인가. 이 모든 문제가 다 분단의 비극으로 생긴 희생이란 공감대가 있다면 (이질적인) 두 개의 일을 동시에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전쟁 없는 통일로 나아가야 민족적 비전이 생긴다. 국내적으론 너무 지나친 양극화로 갈등이 심화돼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원칙을 국가의 기본 방침으로 세우고 여야 정치권이 이걸 갖고 합의하고 또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구도자로서의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다 고교 1학년 때 분황사에서 마주친 도문 스님으로부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긴 뭐가 바빠?”라는 말을 듣고 그 길로 깨달음을 얻고자 절로 들어갔지만 20여 년을 출가 승려가 아닌 ‘최석호(본명) 법사’로 활동했다. 1991년 도문 스님의 권유로 삭발을 하고 출가를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조계종 승적이 없고, 그 또한 여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교단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며 “불교의 포교보다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불행한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까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민주화운동, 북한 지원, ‘안철수의 멘토’에 이르기까지 적극적 사회참여

그는 1983년 대학생불교연합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지만 1987년 어느 정도 민주화운동이 가시적 성과를 거둔 후 오히려 그의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싸우고 비판하는” 기존의 방식으로 이후 100년을 준비할 수 있을까란 회의 속에 3년여를 많은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생각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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