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순번제도 여전
모성권 침해 심각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야간 노동이 심각하다. 밤샘 근무와 함께 초과 근무가 일상화된 상태다. 진씨가 근무하는 병원은 1300병상 규모로 간호사가 1100여 명이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는 18명이다. 경력 16년차인 그가 보여준 ‘8월 번표’는 ‘D(데이)’ ‘E(이브닝)’ ‘N(나이트)’ 표시로 복잡했다. 불규칙한 3교대제다. 나이트 근무시간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다.
“새벽 5시가 피크입니다. 의자에 앉으면 눈이 저절로 감겨요. 생명과 직결되는 일을 하니 스트레스가 심하죠. 처방대로 약을 줘야 하는데 ‘에러’가 나면 하늘이 무너져내려요.” 진씨는 “기계도 에러가 나는데 사람이 밤을 새우면서 실수를 안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어느 병원이든 에러를 쉬쉬하지만 야간 노동하는 간호사들은 거의 100% 실수한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거르다 보니 입사한 지 1년 만에 몸무게가 6㎏이나 빠졌다. 스트레스로 폭식을 해 비만이 된 자신을 못견뎌 하다 그만두는 동료도 있었다.
일이 고돼 평균 근속 연수가 짧다. 간호사 10명 중 6명은 2년차 이하다. 신입은 업무 숙련도가 떨어지니 노동시간이 자연히 길어진다. 진씨는 “‘빅5’ 병원은 한 해 100명씩 간호사를 뽑는다. 우리 병원도 작년에 100명 뽑았다가 인력이 부족해 올해 200명을 신규 채용했는데 절반은 퇴사했다더라”고 전했다.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들의 야간 노동도 여전하다. 대학병원 간호사인 이모(34)씨의 얘기. “2008년 2월 아들을 출산한 후 그해 8월 복직했더니 수간호사가 동의서를 내밀더군요. 내가 원해서 나이트 근무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기분이 찜찜했어요. 병원에 계속 다니려니 결국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죠.”
나이트 근무 때문에 임신을 조절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 부서에 임신부가 몰려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이트 근무를 더 해야 돼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3〜4월 조합원 2만121명이 참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신부의 야간 노동 비율은 평균 29.5%에 달했다. 이 중 특수목적 공공병원의 임신부 야간 노동 비율이 40.5%나 됐다. 특히 같은 부서 내 여성들끼리 임신 차례를 정하는 임신순번제가 민간병원 20.8%, 특수목적공공병원은 26.5%에 달했다. 나영명 노조 정책실장은 “보건의료 사업장은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데도 모성보호 권리가 너무 취약한 수준”이라며 “임신과 출산의 자율권마저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간 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보육에 어려움을 겪는다. 밤 근무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친정 언니가 아이 둘을 봐주는 한 간호사는 “난 완전히 축복받은 경우”라고 했다. 그래도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300병상 규모의 병원 간호사 1명이 환자 18명을 담당한다. 야간 노동에 환자 돌봄부터 인턴의사 업무까지 잡무를 맡다 보니 힘들어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는 여성들이 많다. 병원 전산화와 국제인증평가 도입으로 노동강도가 높아졌다”며 “간호보조인력을 배치하고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