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마음산책
박완서/ 마음산책
지난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내게 가장 아픈 사건은 작가 박완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일이다. 스스로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낸 소설이며, 따스한 감성이 절로 충만해지는 산문을 다시금 읽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 견디기 힘든 일도 없다. 선생과 별다른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두어 번 존경의 인사를 보냈을 뿐이지만, 선생은 작품으로 늘 내게 안부를 전하곤 했기에 그 허전함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예쁜 것’은 반갑기 그지없다. 맏딸 호원숙씨가 선생의 책장을 정리하던 중 “잘 정리하여 모아놓으신 묶음” 즉 “평소 컴퓨터에 저장된 것은 믿을 수 없다며 종이의 정직함을 믿으신 어머니가 A4 용지에 프린트해 놓으신 것”을 발견했고,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됐다. 작가 박완서의 성찰과 지혜가 담긴 미출간 산문들, 어찌 보면 세상에 남긴 선생의 유언과도 같은 책이 바로 ‘세상에 예쁜 것’이다.

선생은 생전의 삶처럼 소탈한 글을 남겼다. 진솔한 고백도 예의 그대로다. 마흔이 넘어 소설가가 된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단다. 전쟁은 스무 살 생기발랄한 나이의 국문학도의 삶을 앗아가 버렸고, 생존의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쳤다. 몇몇 가족은 “세상이 바뀔 때마다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삶을 마감했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선생의 고백은 절절하다. 하지만 선생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세월의 다독거림으로 위무를 받으며” 복수심과 증오가 아닌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상상력임을 배워갔다. 그렇게 선생은 “이야기가 지닌 살아낼 수 있는 힘과 위안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한편 선생은 마흔 넘어 등단한 원동력을 ‘젊음’에서 찾는다.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나서 다시 40년 가까이를 더 살았으면서도 나는 내가 아직도 충분히 젊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젊다는 건 체격이나 용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이 바로 젊음이다. 잔잔함이 묻어나는 글이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 누구 하나 ‘젊음’을 간직한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책 말미에는 교분을 나누었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선생의 글이 실려 있다. 피천득 선생, 김수환 추기경, 장영희 교수, 박경리 선생, 이병주 작가 등 면면도 다양하다. 그중 박경리 선생에 대해서는 “따뜻한 분이었지만 자기 문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엄격한 분”으로 기억한다. 후배 문인들을 먹이기 위해 손수 농사짓는 일을 마다치 않았지만 스스로의 시간과 관리에는 엄격했던 큰 어른, 바로 박완서 선생이 기억하는 작가 박경리의 모습이다.

‘세상에 예쁜 것’을 읽으며 복된 마음이지만, 다시 선생의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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