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계절, 첫 정치 에세이 펴내
“‘여성’ 빠진 경제민주화와 복지 논의는 무의미”

 

최근 첫 정치 에세이 ‘생명의 정치’를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강금실(55·사진) 전 법무부 장관을 17일 오전 광화문의 한 한적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마음먹고 펴낸 첫 정치 화두는 책의 부제 ‘변화의 시대에 여성을 다시 묻다’가 대변하듯 ‘여성’이다. 이번 책을 계기로 여성과 이어진 생명, 권력, 생태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결과물을 내놓겠단다. 여성 판사가 극히 드물었던 1983년부터 10여 년간 판사로 재직, 후에 첫 여성 로펌 대표, 첫 여성 법무부 장관,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 등 으레 ‘첫’을 수식어로 달고 다녔던 그는 “여성으로 살았기에 나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회 주류층, 특히 정치권에 진입한 여성들이 ‘여성’이란 것을 드러내길 매우 불편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당당히 여성 정체성을 주장하는 그가 반가웠고, 법무부 장관으로 시작된 정치 경험 10여 년의 세월의 강을 건너 정식으로 들고 나온 첫 정치변혁 화두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더욱 반가웠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여성 정체성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기에 호주제의 위헌성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하고 이것이 법무부 장관 시절 호주제 폐지에 일조하는 씨앗이 됐으리라.

“여자가 저럴 수가 있나 할 정도로 내 마음대로 했다”며 “욕 많이 먹고, 흉도 잡히면서 경계선에서 고민해왔지만, 여성이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성평등)를 중심에 두고 남성과 만나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남성과도 조화롭게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 여성스러운 은은한 보랏빛 톤의 스타일이지만 만만치 않은 다부짐이 느껴지는 그와 가까운 미래의 희망을 ‘여성’이 주축이 되는 정치문화 개혁에서 모색해보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의 발언은 상당히 ‘용감’했다.

 

‘여성 첫’ 법무부 장관, 서울시장 후보로 여성 정치인 롤모델 제시

-이번 책에 정치 에세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어떤 의미인가.

“정치 활동 안 한 지는 좀 오래 됐다(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현 민주통합당인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이후 2008년 상반기에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했었다). 그 후 공부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셈이고, 책이 그 결과물이다. 결론은, 여성과 생태 중심으로 시스템이 변화해야 (희망 있는)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문제를 말하지 않고는 경제와 복지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직도 여성들은 수적으로는 많으나 남성 위주로 재편된 조직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다. 참여정부처럼 열린 ‘여성’ 사고를 가진 정부에서도 여성문제는 아무리 주장해도 안 하면 그만이었고, 여성부는 파워를 발휘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패러다임의 충돌과 전환 국면에서 벌어지는 이번 대선은 너무나 중요하다. 정치 활동은 안 하고 있으니 책이라도 내서 말씀드리자는 책무감이다.”

-야권 대선 후보 캠프로 합류가 점쳐지고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정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막판 합류 여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 전반이 상당히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은 절실하다. 사회적 역량은 성숙하게 변화했는데 정치권이 이걸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국민과 정치권의 괴리가 계속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번 정권 5년간 그 격차는 늘어나기만 했고, 세계적인 경제위기, 동북아 긴장 고조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 위기를 돌파할 대선 후보가 당선돼야 할 것이다.”

-대선에서의 여성 어젠다 부각, 현실적으로 정말 힘든 얘기다.

“그렇다. 여성은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론 권력 약자이기에 여성과 관련된 정책이 비주류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론 우리의 근대화 과정, 즉 책에서 말한 ‘박정희 패러다임’의 가장 큰 희생양이 바로 여성, 그리고 자연이다. 근대 산업문명 자체가 인간 대 자연 구도로 착취·억압구조인 데다가 우리나라는 이 시기에 군사정권 독재까지 겹쳐 억압이 한층 이중적이고 집중적이었다. 그렇기에 성적 격차를 해소해 평평한 바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비전을 가진 리더를 선출해 사회를 ‘정상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런데, 어떤 후보의 공약을 살펴봐도 ‘여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보육과 출산을 지원하고 휴가를 주면 제대로 된 여성정책인 것처럼 착각하고 여성공약을 낸다. 그래서 저항적이고 약자적인 의미를 띤 ‘여성’공약보다는 ‘성평등’ 공약으로 가야 한다. 여성들 스스로 여성정책이 별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여성’을 들이밀어도 여성 유권자들의 호응이 크지 않다. 문제의식이 자라 지금 젊은 세대는 성평등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기존 시스템이 이들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여성들 스스로 성평등 어젠다를 요구하고 또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현상 읽어내 변화해야 민주당에 희망 있다

-현실 정당에선 이 성평등 가치가 너무나 희박하다.

“특히 현재의 새누리당은 군사정권 이후 엄밀히 말해 당의 정체성이 바뀐 적이 없다. 여성 측면에서 보자면 남성 중심의 권력 패러다임으로 움직여온 당이기에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상하게 거기만 들어가면 여성들이 다 이상해지더라. 아마도 당의 권력 방식에 적응해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야멸차게 말하자면 여성성이 전혀 요구 안 되는 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고 약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성 인재를 키워내고 현재의 정치판 지역 구도를 깨서 아래로부터 역량을 키워내는 시스템으로 가는 정치 개혁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영·호남의 기득권을 챙기고자 여야가 집착하는 소선거구제 시스템이다. 소선거구제를 통해 여야가 총 국회 의석수 가운데 20% 넘는 지역 기반을 수성하고, 수도권에서 어지간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안 뺐기고 늘 이길 수 있는 기반 만들기에만 골몰하는 현실에서 정치를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분야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발전하는 데 반해 별 노력 안 해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면 정치권의 경쟁력은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국민의 여론에 의해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해 선거구제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정치개혁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표방하는 무소속 대통령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존 정치권과 언론이 ‘안철수’를 현상이 아닌 개인으로 보는 것은 인식 오류고 시대의 진실을 놓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의 대응 논리인 정당후보론은 잘못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안 후보가 이미 1년 전 박근혜 대세론을 깬 현상 이면의 민의부터 읽어내야 한다. 즉, 국민은 무소속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정치에 만족 못 하니 새롭게 해다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으로서 ‘안철수’ 이면의 민의를 잘 읽고 수용해 변화한다면 민주통합당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정당이 있어야만 대통령이 된다’는 기존 공식을 고집하는 것은 안철수를 지지하는 수많은 민의를 거부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특히 2030 세대를 만나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이들이 정치를 보는 방식은 ‘아름답냐, 추하냐’다. 진보와 보수가 아니다. 그래서 정당에도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이명박은 아름답지 않다, 문재인은 괜찮다, 안철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남성적 권력구조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성’을 주장하는 데 스스러움이 없다.

“내 사회적 삶의 가장 깊은 고민은 판사 시절부터 시작됐다. 소수자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 관료사회에 적응하면서 스스로를 지켰던 방식은 법관으로 적응은 하되 저항과 비판의식은 잃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다. 구체적으론 88년 우리법연구회를 다른 남성 동료들과 만들면서 그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이기에 여성과 남성의 보편적 관점에서 성평등 시각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몸에 뱄다. 그러면서 ‘공존’의 기술을 터득했다.”

-그래도 ‘여성’이란 것이 불편하긴 했을 것이다.

“일부러 남자처럼 해 본 적도 없고, 내가 그냥 여자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조심하면서 (여성임을) 많이 가리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당시 판사 시절엔 여자가 술 잘 마시면 비판받는 시대였는데, 내가 술을 좀 마시는 편이라 회식 때마다 늘 (여자로서) 몇 잔 마셔야 하나, 2차는 가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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