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공간 민들레 주최로 소리꾼 제자와 에듀콘서트
남원서 5년째 배움 공동체 ‘소도타’ 운영… 제자 가르쳐
시원하게 밀어버린 민머리에 운동화 차림의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작곡가 겸 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56). 임씨는 지난 2일 대안교육공간 민들레 주최로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열린 ‘다시, 인간교육을 생각하는 에듀 콘서트’에 출연해 전남 남원에서 5년째 운영 중인 배움 공동체 ‘소도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느낀 이야기를 피아노 연주를 곁들여 들려줬다.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지인 ‘소도’를 빌려 지은 이름이 인상 깊다. 클래식부터 국악, 재즈, 대중음악까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풍류 피아니스트’가 요즘 보기 드문 도제식 학습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이채로웠다.
이날 에듀 콘서트에는 김재웅 서강대 교수,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희망의 우리 학교’를 세운 최훈민군, 동화작가 채인선씨 등 3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피아노보다 교육에 쏟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분”이라는 현병호 민들레 대표의 말처럼 임씨는 스무살 때부터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피아노에 홀려 고교를 때려치웠고, 승려생활을 거쳐 만학도로 대학(서울시립대)에 입학한 남다른 인생사가 영향을 끼쳤을 듯했다.
공연에선 제자 송도영(21)씨가 나옹선사의 시에 스승이 작곡한 ‘청산은 나를 보고’와 ‘자연가’ ‘도라지타령’ ‘늴리리야’ 등 10여 곡을 들려줬다. 송씨는 내년 3월 9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에서 데뷔 무대를 갖고 “세상에 음악가로 살겠다는 출생신고”를 할 예정이다.
그는 “공부를 잘했지만 노래하고 춤출 때 가장 좋았다. ‘중·고교 때 에너지가 공부에 올인하기 가장 좋은 에너지’라는 말씀을 듣고 내 삶에 관심이 생기고 적극성을 갖게 됐다”며 “고2 때 학교를 자퇴했다. 아버지(송상섭 전북대 교수)도 ‘하고 싶은 일 하라’며 기운을 북돋워주었다”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검정고시를 치른 도영씨는 대학 대신 소리 공부를 택했다. 그림을 그리는 언니 도혜(32)씨도 6년째 임씨의 문하생으로 있다. 임씨가 충남 서천 동강중에 초빙돼 음악을 가르치던 시절, 전주에 살던 자매는 서천으로 옮겨 배움을 시작했다. 도혜씨는 내년쯤 개인전을 위해 준비 중이다.
“도제교육, 공동체 교육은 거의 실패했다고 해요. 한 집에 살면 사람이 초라하고 형편없어 보인다면서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게 청소입니다. 하루 두 번씩 해요. 그 다음이 밥 짓고 설거지하는 일이에요. 동네 어른들께 인사도 잘 하게 하죠. 100번 만나면 100번을 해야죠. 요즘 애들 안 하는 거 다 시켜요. 옛날 ‘소학’부터 가르치는 식이죠. 왜 청소해야 하는지 이해하면 먹혀들어요. 교육의 첫 번째가 바로 아이를 이해시키는 일입니다.”
사찰에서 아홉 달 동안 밥하는 공양주였던 스승은 밥 짓는 일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그의 또 다른 교육 방식은 기다림이다. 1년 반 동안 한 집에 살면서 인사 안 하는 제자도 “너무 지쳐 있구나” 싶어 무한정 기다려줬다.
임씨는 전라도 억양으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거침없이 교육철학을 펼쳐보였다. 핵심은 몰입이다. “열다섯 살 때 너무 가난했는데 부자들만 치던 피아노에 무당신 내리듯 찍혔어요. 학교 걷어치우고 교회 옥상 창고에서 자면서 하루 16시간 논스톱으로 피아노를 두드렸죠. 2시간 자고 120원짜리 삼립식빵 먹는 게 고작이었어요. 창고에 누워 별을 보며 밤마다 눈물을 죽죽 흘렸어요.”
공연 막바지에 소설가 이외수씨가 한복 디자이너인 임씨의 아내 이효재씨에게 써준 시 ‘효재처럼’에 직접 작곡한 곡을 들려줬다. ‘불꽃처럼 살 일이네’라는 가사가 그가 말해온 ‘몰입’이란 화두와 맞닿아 있었다. 현 대표는 “임씨는 청중이 다 공연장을 떠날 때까지 늘 ‘아리랑’을 연주한다. 음악을 밟고 가라는 의미다. 사람을 아끼는 것, 그것이 교육의 인간화 아닐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