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슭의 생(生)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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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대기가 청량한 장백현엔 가랑비가 내렸다. 비안개보다 더 아득히 먼 곳에 백두산이 있을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중 나온 사람과 반갑게 만나고, 남보다 먼저 짐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앞선 사람의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나가려 애쓰고 누군 하얗게 눈을 흘기거나 거친 중국말로 욕을 했다. 

성옥은 말이 없었다. Y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까닭을 모르게 두 사람은 그랬다. 마치 이제 곧 헤어질 사람들처럼, 혹은 다시 시작하려면 어떤 타협을 해야 할 사람들 같았다. 가까이 붙어 섰어도 거리가 느껴지는 표정이, 사뭇 슬펐다.  

“어떡할까요?”

성옥이가 배낭의 끈을 느슨하게 잡은 채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순간 Y는 울상을 지었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 표정 같았다.

“과원촌까지는 4킬로쯤 돼요….”

성옥이가 발끝으로 길바닥을 직직 긁으며 말했다. 발끝에서 물기가 미세한 실도랑으로 모이곤 했다. Y는 성옥을 바라보았다. 절망과 과로, 분노와 슬픔, 그리움과 좌절… 속에 성옥의 전 존재가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압록강, 성옥의 말로라면 옥수수 한 배낭을 얻어 굶어 죽어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한밤중에 건너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두 번 잡혀가고 다시 영화처럼 탈출하고, 팔리고 또 팔리고 자궁을 긁히고 또 파헤쳐지고, 돈에 투신하듯 돈이 내미는 희망의 손을 잡고 서울에 가서 대한민국의 여권으로 이곳에 다시 온 여자, 성옥은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Y의 곁에 서서 당신이 마음대로 하라, 거의 그런 모습으로 비에 젖은 길바닥을 여전히 긁고 있었다.

“성옥이 맘대로 해. 배는 안 고파?”

Y가 눅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 압록강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북한의 산을 외면하려고 애썼다.

아득하게 몇 십 초가 지나서였다. 성옥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팔을 추켜들고 기지개를 켰다. 굳었던 표정도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Y가 웃었다. 그는 이제 살았다, 거의 그런 표정이었다.  

“우산 가져왔나요?”

성옥이가 Y의 점퍼 위에 방울방울 구르는 빗물을 보며 물었다. 아, 그래! Y가 중얼거리며 배낭에서 우산을 꺼냈다. 성옥이도 그렇게 했다. 산촌이라서 날씨가 변덕스러우니 작은 우산을 챙기라고 했었다.

성옥이가 앞장을 섰다. 자가용 승용차가 지나가고 짐차가 지나가고 리어카가 지나가고 자전거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울긋불긋한 가게의 간판들, 한글과 한자가 함께 쓰인 상점 앞에서 불룩하거나 늘어진 비닐 자루를 들고 나오는 사람,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식점에선 중국 향신료 냄새가 퍼졌다. 중국 북방의 억양에 조선 북쪽의 억양이 섞인 조선말 소리도 들렸다. 두 사람은 그런 인적과 소리와 탈것들에 섞여 그저 걸었다. 배고프지 않으냐고 Y가 한 번 더 물었다. 성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에 들리는 말이 없었다. 자꾸만 내 인생은 뭔가, 이런 개 같은 인생도 있나, 이런 욕지기가 치밀었다. 누구든 뒤엉키어 한바탕 피를 철철 흘리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이 미칠 것 같은 혼란과 의문이 가실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참기 어려운 충동 사이사이에 저 남자가 무슨 죄야, 저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너무 착해서 나쁜 사람인가? 의심이 들 정도인데.

이런 생각이 들면 또 울 수 없는 슬픔이 솟구쳐 도망가야 했다. 

“택시 타요.”

반걸음 앞선 성옥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Y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옥이 그의 팔짱을 끼었다. 성옥의 팔이 가늘어 Y는 안쓰러웠다. 예전에도 수없이 잡아보았던 팔이건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미안해요.”

“왜?”

“나 때문에 이런 데까지 와야 하고.”

“나 때문이 아니고?”

Y가 가볍게 말했다.

손짓하는 성옥을 보고 택시가 그들 앞에 섰다.

과원촌은 산비탈 아래 오묵하니 들어선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길에서 200미터 이상 뒤편에 성처럼 담을 쌓고 들어앉아 있었다. 길가엔 양편으로 가로수를 심어 들고나는 길을 냈고 입구엔 너른 주차장이 있었다. 성옥은 몰라보게 달라진 과원촌에 어리둥절해했다. 그 사이 조선족만 산다는 과원촌은 부유해진 것이었다. 강을 건너오는 순진한 북조선 여자들을 팔아 돈을 벌었을까? 성옥은 한족 택시 기사에게 대기 요금을 지불할 것이며 10분이면 충분하다고, 요금도 흥정했다. 

가랑비는 그새 그쳐서 하늘은 흐리기만 했다. 비에 젖은 산천은 고즈넉해 보였고 압록강 둑길의 억새와 관목들도 젖어 있었다.

성옥이보다 먼저 Y가 2차선의 아스팔트 포장길을 가로질러 강가로 갔다. 건너편은 검은 바위산, 산 위엔 나무들이 가파른 자세로 서 있고 물은 소리 내며 흘렀다. Y는 흠뻑 젖은 관목 가지를 젖히고 강을 바라보았다. 강폭은 좁고 물살은 빠르고 깊어 보였다.

Y는 얼마나 그곳에 서서 빠른 물살, 좁은 강폭, 깊은 물길을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그는 그 사이 성옥을 잊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저 강물 속의 작은 물고기 한 마리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 건 아닐까. 물고기끼리 지지고 볶는 일이 가엽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아니면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닐까. 사람의 생각마저 불러일으켜지지 않는 자연이 거기 있어서… 그랬을까.

그가 강가에서 강을 바라보는 동안 성옥은 마치 관광가이드처럼 건너편 길가에 서서 이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고 깃발을 휘두르며 소리칠 시간을 기다리는 가이드.

혹은 저 사람은 뭘 보겠다고 저리 오래도록 서 있지? 무심히 이런 의문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알 수 없는 저 세상,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려는 한 남자의 순정은 자신의 인생 밖에 있었으므로.

성옥의 맘이 전해졌을까? Y가 이윽고 뒤를 돌아보았다. 성옥이가 손을 흔들었다.

택시는 혜산시가 바라보이는 곳에 그들을 내려놓았다. Y는 더 이상 그곳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혜산시와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지겨움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지겨움과는 다르게 성옥이도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아직 어버이 당의 품에서 인민이었던 시절이었다. 혜산역 역사에서 몇 밤을 새웠다. 그 사이 죽어가는 할아버지에게 계급장과 배지가 달린 옷을 벗어 덮던 군관동무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마지막 윗도리를 벗어 장에 나가 빵 두 개와 바꾼 날 저녁도 잊히지 않고 지금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꽃제비 소년의 뒤에 달라붙었던 죽음의 기미, 항문의 괄약근이 풀려 똥물이 흘러내리던 그 소년이 방금 보는 듯 선연했지만 성옥은 그곳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고향은 가보거나 그리워하는 곳이었다. 절대로 구경하는 곳이어선 안 됐다. 고향은 어머니이기 때문이었다.

Y와 성옥,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지겨움과 지루함이 뭉쳐서 그들은 택시로 심양까지 갔다. 성옥은 내내 Y의 어깨에 기대어 졸다가 잠을 자다가 흠칫 놀란 듯 깨었다가 나쁜 꿈을 꾸었는지 신음도 뱉다가 그랬다. Y도 가끔 졸았다.

심양의 도심지에 Y가 예약해둔 호텔로 들어간 건 새벽이었다. 차에서 잠을 잔 탓인지 성옥은 대낮처럼 쌩쌩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흥분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Y의 앞을 오갔으며 독주를 마시고 그저 고함치듯 웃고 침대에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런 성옥을 바라보는 건 Y에게 큰 고통이었다. 슬픔 때문이었다. 차라리 지금 성옥이가 엉엉 운다면 좋을 것 같았다. 이게 뭐냐고, 뭔가 남한 남자 자신에게 화풀이라도 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성옥은 정반대였다. 마치 난 나쁜 여자, 타락한 여자, 누구라도 밟아주길 바라는 여자라고 알몸으로 시위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랬을까.

성옥이가 제 풀에 지쳐 그의 곁에 누웠다. Y가 성옥의 등을 토닥였다. 침묵이 그들을 어루만지고 감쌌다. 침묵에 성옥의 숨소리가 감겼다. Y의 숨소리가 덮였다. 시간이 침묵으로 흘렀다.

“왜 나 같은 여자한테 잘 해주세요?”

한동안의 침묵 속에서 성옥이가 도발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Y는 침묵에 감겨 있었다.

“왜…!”

성옥이가 물었다. 말끝에 서러운 울음이 고드름으로 매달려 곧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Y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옥이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 이런 사람이 되어 볼까… 해. 성옥이를 조국의 반역자로 단정하지 않고… 빨갱이로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Y가 너무 차분해서 고요함이 만져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성옥의 몸에선 금강석처럼 응축되었다가 아지랑이같이 풀리는, 기이한 느낌이 숨 쉬듯 이어졌다.

그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정작 그곳에선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던 강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던 건너편 강둑, 바위산, 기찻길과 숲이 선명하고도 흐릿하게 기억났다. 설명할 수 없고 표현도 가능하지 않은 감정이 슬픔과 그리움의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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