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일에 짓눌린 만성 피로 사회, 한국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직장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OECD 평균인 1749시간과 비교해 400시간 이상 많다.

야근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무능함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려면 눈치를 살펴야 하는 직장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노동시간 단축, 일과 가정의 양립은 요원한 목표일 것이다.

업무 부담과 상사 눈치를 살피느라 억지 야근하는 직장인들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눈치 보지 않고 정시 퇴근해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가정의 날’을 정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정의 날만큼은 정시 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된 직장들도 적지 않다. 정부 부처들도 앞장서고 있고, 은행권 등에도 모범적으로 확산되었다.

서울시도 매주 수요일을 야근 없이 일찍 퇴근하는 ‘가정의 날’로 정한 지 몇 년 됐다. 이날은 야근을 해도 초과근무로 인정해 주지 않고 구내식당도 운영하지 않는다. 그래도 야근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12일부터 겨울철 에너지 절약 실천의 일환으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청사 전체를 소등하는 ‘사랑의 불 끄기’ 운동을 시작한 뒤에는 달라졌다. 아예 건물 전체를 소등해버리니까 수요일만큼은 다들 일찍 퇴근한다. 눈치 안 보고 정시 퇴근할 수 있다고 반응도 좋았다. 당초 서울시는 수요일 저녁 불 끄기를 겨울철 몇 개월만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연중 캠페인으로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에너지 절약 효과도 있을 뿐 아니라 야근을 확실히 줄여 삶의 질을 높이도록 배려한다는 차원에서다.

가족친화 경영을 도입한 기업 중에는 ‘가정의 날’에 정시 퇴근하는지 여부를 조사해 부서별 평가에 반영하거나 전원과 전산망 접근을 차단해 야근을 불가능하게 하는 기업들도 있다. ‘칼퇴근’ 문화 조성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은 전국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도시로 손꼽혀왔다. 대형 공장들이 많고, 밤샘 근무가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 자동차 공장들이 노동시간을 단축, 밤샘 근무를 폐지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조치다. 에너지 절약 효과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더 많은 기업들이 정시 퇴근 문화 조성과 가족친화 경영, 그리고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화석연료로 만든 에너지를 덜 쓰고 내 몸을 더 많이 움직이며 쾌적한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웰빙 생활의 비결이다. 적게 일하고, 에너지도 적게 쓰고, 더 행복하게 살자는 문화가 널리 확산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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