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길다 싶더니 어느새 초여름 더위가 찾아왔다. 난방 기기를 끄자마자 에어컨을 가동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벌써부터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 이들도 많다.

올 여름도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리게 될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전력난은 냉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과 겨울에 심각해진다. 그런데 올해는 봄에도 전력난이 심각하다. 원전들이 줄줄이 고장을 일으키면서 정비를 위해 세워놓은 발전소까지 포함해 9기의 원전이 동시에 멈춰서 지난 4월 22일은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도 흔히 발령되지 않는 전력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예비전력이 360만kW까지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도 발생해 유례없는 전력수급 비상 상황이었다.

심각한 봄 전력난의 원인을 들여다보니, 원전을 더 짓는다고 전력난이 극복될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대형 원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전력 위기는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원전은 전력 과소비를 부추기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원전은 특성상 한번 가동시키면 껐다 켰다 하기 어렵고, 전기는 저장하기 어려워 생산한 만큼 소비하지 않으면 버려진다. 과거, 정부는 원전을 과도하게 많이 지어 남아도는 전기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경부하 요금, 심야전기 할인요금을 신설하는 등 전기료를 인하하고, 전기로 난방을 하도록 유도해 왔다. 전기를 원가보다 싼값에 공급하니 다른 연료로 하던 일을 모두 전기로 바꾸는 변화가 산업계는 물론 농업과 서비스업 현장, 가정에서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전력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니 전력난은 핵발전소 확대가 불러온 전력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대형 원전 위주의 중앙집중식 전력공급 방식 때문에 송전과 배전 과정 중에 손실되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의 30% 이상을 수도권에서 소비하지만, 수도권 근처의 발전설비 용량은 전체 용량의 10%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전력은 해안가의 대형 발전소에서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끌어온다. 전력 전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률은 4% 정도인데, 전력피크 시에 그 양은 280만kW에 달한다. 즉 원전 3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쓰지도 못하고 송배전 과정에서 그냥 날려버리는 셈이다. 송배전 설비 건설에 따른 비용과 사회적 갈등은 또 얼마나 막대한가.

송배전 손실을 줄이고 사회적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그 지역에서 쓰도록 분산형 전력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서울시가 원전 한기가 생산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수요를 줄이자는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통해 서울을 에너지 생산도시로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력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원전을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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