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생순’은 고마운 선물… 실제와 다른 허구도 많아
핸드볼은 흔히 ‘비인기·효자’ 종목으로 불린다. 국제대회 성적은 좋지만, 관중에게는 외면받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그런 핸드볼이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온 국민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란 영화 덕분이었다. 2008년 1월 개봉한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선수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당시 사실을 바탕으로 감동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으며 영화는 4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으며 흥행했다.
영화 덕분에 핸드볼은 물론 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극중 김정은씨가 맡은 ‘혜경’이 나를 모델로 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혜경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선후배 간의 깍듯한 예의를 중요시하면서도 팀워크를 챙기는 저돌적인 성격, 일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오래 뛰었기 때문에 나오는 ‘리더 본능’ 등.
영화는 여자핸드볼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내기도 했다. 팀이 없어져서 생계전선으로 나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등은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내용도 있다.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지만, 극중에서는 혜경은 이혼녀로 핸드볼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이혼이란 허구가 사실이 되기도 했지만…). 한국 대표팀 감독과 혜경의 러브라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주위 사람들은 “그게 전부 사실”이냐고 내게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대중은 왜곡된 장면까지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해 새삼 깨달았다.
난감했던 기억도 있다. 시어머니께서 본인의 아들이 자살하는 내용이 나오자 내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나는 “영화는 영화일 뿐 사실이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 말아주세요”라며 시어머니를 달랬다. 일일이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다닌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사실과 픽션의 경계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난감한 기억도 있지만 우생순은 여러모로 한국 핸드볼계에 아주 고마운 선물이었다. 대중이 여자핸드볼의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한 계기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해 당시 실제 모델이 됐던 오성옥은 물론, 실제 모델은 아니지만 김온아, 문필희 등 다른 선수들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화가 나온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우생순’의 임오경으로 본다. 좋은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 한국 여자핸드볼은 다시 ‘우생순’ 이전으로 돌아갔다. 매년 ‘SK핸드볼코리아리그’를 벌이고 있지만, 중요한 경기가 벌어져도 구장은 텅텅 비는 경우가 많다. 핸드볼 관계자들은 ‘우생순’ 신드롬을 다시 만들어보려 애쓰지만,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핸드볼계에 제2의 우생순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