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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은 지난해 12월 통과된 ‘남녀차별금지법’ 시행과 ‘황혼

이혼’패소사건으로 여성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

다. 이런 가운데 문화계에는 90년대와 지난 한 세기에 대한 평가작

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며, 상업적 페미니즘 대신 고민하는 페미니즘

이 자리잡았다.

제2회 여성영화제 대중화 성공

여성촬영감독 1호 탄생

4월 16-23일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는 여성

주의 영화의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1만7천여 명이 다녀

간 영화제에는 관객층이 넓어지고, 출품작 양과 질적 수준도 높아졌

다. 정재은 감독의 〈도형일기〉가 최우수상, 장희선 감독의 〈고추

말리기〉가 우수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유일한 주부로 참가해 우수

상을 받은 이경희씨의 〈있다없다〉는 영상매체를 통해 여성의 목소

리를 담아낸다는 영화제 취지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2월 중순 개봉한 〈연풍연가〉는 한국 최초의 여성촬영감독의 존재

를 알렸다. 그는 51회 칸국제영화제 공식초청작인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에서도 촬영을 맡아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충

무로 도제시스템 출신이 아닌 그는 여성이고, 촬영기사협회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촬영 후 한국촬영기사협회로부터 이지매를 받기도

했다.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은 뉴욕여성방송인협회가 뽑은

‘세계 여성감독 작품 25’에 선정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계

적으로 부각시켰다.

지난 연말부터 계속된 스크린쿼터 지키기 운동은 올해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임순례 감독이 다시 삭발을 감행했다.

외화로 새엄마와 전처 관계의 편견을 깬 〈스텝 맘〉, 신데렐라 컴

플렉스를 깨는 〈에버 애프터〉, 탈옥한 여죄수들의 통쾌한 로드무

비 〈밴디트〉, 흑인 여성감독의 성장영화 〈이브의 시선〉, 20대 여

성의 인생보고서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 등도 눈여겨 볼만한 작

품이었다.

여성평론가들 여성문학 ‘다시보기’

90년대는 여성작가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귀자, 신경

숙, 공지영, 은희경 등 출간만 했다하면 몇 십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

셀러 작가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여성평론가를

중심으로 ‘90년대 여성문학’ 다시보기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학평

론가 고미숙, 김정란, 황도경, 신수정, 이선옥씨 등에 의해 주도된 이

들 논의는 흥행과는 별도로 문학적 완성도를 점검한다. 평가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멜로적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든가 ‘유

아적이며 신파조에 진부하다’는 혹평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여성

모습 재발견’이라는 찬반 양론으로 좁혀진다. 그간 남성 평론가들

에 주도된 ‘문학의 왜소화’라는 인상주의적 비평보다 텍스트를 꼼

꼼하게 분석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취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상반기에는 박완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조경란 〈가족의 기

원〉, 은희경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신경숙 〈기차

는 7시에 떠나네〉, 김인숙 〈꽃의 기억〉, 정정희 〈연애〉, 공지영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등이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편 올 상반기에는 이수영, 김예리, 방지나 등 젊은 여성작가들이

PC통신을 통해 판타지 소설을 대거 선보이며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지난 4월 아줌마를 소재로 한 오형근의 〈아줌마전〉은 아줌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뻔뻔’, ‘무식’으로 대변되는 ‘아줌마’

비하문화는 사실 각종 매스컴이 주도한 것. 아줌마들은 산업화 과정

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희생되며 생존을 위

해 지금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성을 위한 모임’이 내놓은

〈제3의 성-중년여성 바라보기〉는 아줌마들이 보는 ‘아줌마’에

대한 담론이다. 여기서는 중년여성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의 필요

성과 남성중심적 언론관행의 개선을 요구한다.

90년대 후반 들어 〈접속〉을 비롯, 흥행에 성공한 멜로 영화들이

양산됐는데, 여기엔 ‘여성용’ 혹은 ‘저급’의 딱지가 붙었다. 각

매체를 통해 ‘멜로논쟁’이 벌어졌는데, 유지나 영화평론가 등은

〈멜로란 무엇인가〉를 통해 여성의 숨은 욕망을 채워주는 ‘멜로’

다시 보기를 제언했다.

여성 역사 재평가 작업 눈에 띄어

지난 4월 27일 열린 ‘나혜석 바로알기 제1회 국제심포지엄’은

‘나혜석론’에 불을 당겼다. 여기서는 나혜석을 ‘방탕했던 자유여

성’이 아닌 가부장제 질곡에 얽매여있던 여성의 해방과 권익을 찾

고자 과감하게 행동한 선구적 여성해방론자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

러나 아직 나혜석 개인에 대한 관심에 머물 뿐 그와 사회의 관계를

연결지은 연구나 일대기 정리가 안된 상태라 성과보다는 과제가 많

이 남았다.

한편 1930년대 최고의 리얼리즘으로 꼽히는 여성작가 강경애도 반

세기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한국과학기술원 이상경 교수가 〈강경애

전집〉을 묶어냈고, 여성평론가와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중국 연변

에 문학비를 건립 중이다. 그간 간과됐던 강경애의 페미니즘적 면모

도 부각됐다.

한편 소설가 김신 명숙씨는 여성주의 역사소설 〈허난설헌〉을 통

해 남성과 똑같은 주체성과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허난

설헌의 삶을 발굴해냈다.

페미니즘 전문서도 여러권 출간됐다. 조혜정 교수는 〈성찰적 근대

성과 페미니즘〉을 통해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 화두를 던진다. 또

성적 환상과 상업적 술책으로 벗어나 신체의 주인이 되자고 촉구한

〈유방의 역사〉, 〈페미니즘 사전〉, 〈여성의 역사3〉, 〈단독비

행〉,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페미니스트 설치미술가 이불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여성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한 설치미술가 이불

씨가 6월 13일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불씨는 그간 아트선재센터, 미

국 현대미술관과 스위스 베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하며, 끊임없

이 여성성에 대한 담론을 제시해왔다.

이와는 달리 지난 91년 위작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던 천경자 씨 '

미인도' 진위논란이 위조범의 자백으로 다시 불거져 천경자 씨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여성주의 연극도 끊이지 않고 발표됐다. 그룹 여행자의 〈대지의

딸들〉은 ‘딸’이라는 이방인이 겪는 인생 여정을 통해 폭력적인

‘아들의 세계’를 고발한다.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성차별적 현실

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보여준 〈디오니소스 2000〉, 세대별 여성의

인생을 고찰한 〈키 큰 세여자〉, 에코페미니즘 연극 〈쉬즈〉 등

작품성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한 작품이 늘어났다.

한편 5월 29일 페미니스트 록밴드 ‘마고’가 첫음반을 내고 콘서

트를 연 것을 비롯, 언더그라운드 여성 밴드의 활동도 주목을 끌었

다. ‘변신 시멘트 귀신’ ‘노 허즈밴드’ ‘무슨 연구소’ 등은

스스로 즐기며 여성운동의 수단으로 음악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의 공연은 5월 15일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여성만화인협회는 무크지 〈씨너클〉을 창간하며 여성만화인 연대

와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마련했다. 김진의 〈바람의 나라〉, 신일숙

〈리니지〉 등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컴퓨터 게임으로 개발되어 멀티

컨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열며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다. 문화관광부

가 지난 4월부터 분기별로 선정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에 황미나

의 〈레드문〉, 문흥미 〈디스〉, 김진 〈바람의 나라〉 등이 뽑혀

공공도서관, 대학 만화관력학과에 비치된다.

한편 여성 무협작가의 출현도 흥미롭다. 남성 전유물로 여겨 온 무

협소설계에 등장한 진산씨는 무협소설의 고정관념을 깨고 〈홍엽만

리〉, 〈사천당문〉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그

려내어 여성독자를 늘리면서 후배 여성작가 출현도 가능케 했다.

여성탐험가들 화제

여성주의 미디어 운동 활발

오지여행가 한비야씨가 몽골 중국 티베트를 둘러보고 출간한 〈바

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4〉역시 자연을 정복 대상이 아닌 더

불어 사는 이웃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여성주의적 여행 모델을 제시

했다. 3백년 전 최초의 여성탐험가들의 탐험기인 〈길들일 수 없는

자유〉와 〈아름다운 동행〉 역시 여성들이 자연을 통해 이웃을 사

랑하고 자아를 확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한편 지난 5월 초 네팔 관광부는 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후 실종됐

던 여성산악인 지현옥씨의 사망소식을 알려왔다.

미디어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새로 발족한

21세기 여성미디어 네트워크는 ‘여성주의 저널리즘 왜 필요한가’,

‘언론은 여성인가 남성인가 - 황혼이혼 그리고 O양 비디오 보도를

중심으로’등을 주제로 세차례 토론마당을 열고 우리 사회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 시켰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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