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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건축가들은 50, 60년대 건축공학과를 전공했다는 사실 하나만

으로 ‘왜 홍일점을 자처했는가’라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많이 받았

다.

건축과 지망 여학생이 드물었던 것은 건설현장을 금녀지역으로 인식

한 사회분위기도 많이 작용했다. 60,70년대만 해도 현장에 나타나면

인부들이 재수없다며 고개를 돌렸던 일을 대부분 경험했다.

여성들이 현장경험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없에기 위해 남자로 변장

을 하고 현장에 갔다가 입구에서부터 여성임을 알아차리고 미장이들

이 도구를 내던지는 수모를 당한 경험도 대부분 갖고 있었다.

건물을 하나 올리는 것보다 건설현장 속 금녀편견이 가장 어려운

공정이었던 건축가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60대에서 20대까지 세대별

로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경영자로서 건축가로서 2중의 소임을 다

하는 여성건축가들을 만나 보았다.

건축의 미래상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삼성동 포스코센

터의 설계를 맡았던 간삼의 대표는 여성이다. 지순(64) 사장, 그는

국내 여성건축가 1호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육순의 나이

에도 왕성한 경영활동으로 후배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선배’이기

도 하다.

“요즘요. 무척 힘들지요. 무엇보다 건축상황이 예전과는 다릅니다.

전에는 그저 열심히 일에 몰두하면 좋은 성과가 있었지만 요즘은 경

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

단지 기술력에 따른 경쟁만이 아닌 사회적 경쟁력이 더 필요한 사

회가 지순 사장에게는 조금 아쉬운 면이지만 보통의 여성기업인들이

늘상 그렇듯 ‘신의’를 지켜온 것이 오히려 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

을 해 가라는 권유를 받고 있을 정도다.

1983년 설립된 간삼의 직원은 1백30명. 경비절감을 위해 50명이 정

리되고 남은 인원이다. 지순 사장은 “사업이라기보다 설계기술을

더 연구하고 발전시켜 건축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돈

을 벌겠다”는 생각에 앞선다. “이익추구가 원칙이지만 좋은 작품

의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설계비를 덤핑처리하는 지경이

니 마이너스만 안되면 된다는 생각이란다.

지순 사장은 “건축사 사무소는 인력에 가장 큰 투자를 해야 하는

점이 경영자로서 만만치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온다”고 털어 놓는

다. 현재 직원 중 대부분이 건축설계를 하는 고급인력들이라 인건비

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기기들을 때맞춰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비

용도 경영자로서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사회가 점차 젊어지는 추세라 젊은 팀장에게 많은 권한을

주어 업무를 진행시킨다. 지순 사장은 ‘설계는 1인 작업이 아닌 공

동 작업’을 힘주어 얘기한 것을 되새기면 이해가 가는 경영방식이

다. 포스코센터만 해도 설계사만 40명이 투입되었다고 지순 사장은

넌지시 끼워 넣는다.

지순 사장은 여성단체로부터 맡는 일은 솔직히 돈되는 일은 아니라

고 말하면서도 설계만큼은 확실하게 ‘봉사’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여성 공동의 장’은 ‘자연공간과 조화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이 외에도 포항공대, 동숭아트센터, 계몽문화센터, ‘관동구경’에

하나로 속하는 동양시멘트 기념관 및 영빈관, 국회의장 공관, 과천에

위치한 코오롱 타워, 삼성 태평로 빌딩, 조흥은행 본점, 한국은행 본

점, 미도파 상계 백화점 등이 (주)간삼 종합건축사 사무소의 주요 실

적이다.

지순 사장은 앞으로 간삼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자신은 고문으

로 앉을 계획을 갖고 그 시점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직원들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들어있기

도 하다.

지순 사장은 1958년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여자 후배

를 구경할 수 없었다. 당시 홍대, 한양대, 서울대밖에 없던 건축과

통틀어 여학생이 1-2명 정도였고 졸업 후 사회 생활을 할 때도 한

10년동안 유일한 여성건축가라는 딱지가 붙어 다녔다.

건축을 전공한 것은 의외로 오빠의 영향이 컸다. 그의 오빠는 그림

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건축관련 잡지를 부지런히 날랐고 외국의 여

성건축가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순 사장은 71년부터 20년 동안 연세대 주생활학과에서 교수를 역

임했다. 1958년부터 2년 동안 대한주택공사 근무시절 잦은 야근에

그의 부친이 ‘빠걸이나 밤에 다니지 여염집 여자가 어떻게 한 밤중

에 다니냐’며 야단해 학교로 간 것이다. 학교에 가서도 그는 신공

법, 새로운 건축자재 정보와 현장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건축사무소를 차려 일을 하기도 했다. ‘의사가 임상을 하는 것처럼

건축과 교수가 실무를 모르고 어떻게 강의를 하겠는냐’는 지론 때

문이었다.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을 역임했으며 국방부 건축심의위원, 서울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을 맡고 있는 지순 사

장은 간삼을 대표하는 포스코센터로 1995년과 96년 한국건축문화대

상, 서울시 건축상 금상, 올해는 건축가협회에서 지난 한해동안 건축

관련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초평건축상’

을 수상했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여성건축가 현황

대한건축학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전문여성인력정보 데이터베이스

를 통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여성건축인들은 2백50명 정도. 현역 중

‘개척세대’로 불리는 1세대는 천병옥 한국전통의장연구소 대표,

지순 간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가 대표적이다. 나란히 35년생

으로 50년대 후반 건축과의 희귀여학생 중 하나였다. 60년대 말 건

축공학과를 졸업한 2세대는 김복수 한국여성건축가협회 회장(한건축

사사무소 부사장), 김인숙 한내 엔지니어링 사장 등 역시 손가락으

로 꼽는다. 30대 중반에서 40대 건축가로 묶은 3세대는 교수, 연구소

와 기업체 중견관리자로 주로 활동한다. 20대말 30대 중반에 속하는

4세대 건축가들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과 건축관련 잡지 기자, 기

업체, 건축사무소에서 차장, 대리급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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