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여성과 살림예술’ 낸 가배울 김정희 대표

 

가배울 김정희 대표가 3년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쓴 ‘남도 여성과 살림예술’을 들고 서 있다. 김 대표는 “살림예술은 나누는 문화다. 상생 속에서 삶을 고양하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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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울 김정희 대표가 3년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쓴 ‘남도 여성과 살림예술’을 들고 서 있다. 김 대표는 “살림예술은 나누는 문화다. 상생 속에서 삶을 고양하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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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배울을 만들어 문화나눔운동을 펼쳐온 여성학자 김정희(55)씨가 최근 ‘남도 여성과 살림예술’(모시는사람들)을 내놨다. ‘가배’란 추석의 옛말.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 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낸 그는 요즘 “가배문화가 꽃피는 마당을 되살리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월마을(달맞이마을)을 거점으로 공정여행을 비롯해 여행을 도·농 직거래로 연결시키는 남도 꾸러미 사업, 귀촌 워크숍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남 강진과 서울을 오가며 바삐 사는 그를 계사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지난해 12월 30일 만났다.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일과 놀이가 함께 이뤄지는 게 가배문화”라는 그의 말을 듣자니, 신라시대 여성들이 길쌈내기를 하는 풍경이 상상이 됐다. 당시 내기에서 진 여성들은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했고, 이때 가무와 온갖 놀이로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베 짜기는 여성들의 일이자 축제였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일과 놀이가 분리돼 있어요. 미친 듯이 돈 벌곤 너무 지쳐 돈 쓰러 해외로 나가지요.”

향토색이 살아 있는 여성 지역예술을 생생히 담은 책에는 일과 놀이를 삶의 터전에서 즐기는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새벽에 3시간 동안 춤 연습을 하곤 식당 문을 여는 아주머니, 연극 대본을 농사 짓는 틈틈이 외워 훌륭히 무대에 올린 농촌 할머니들…. 거인의 전설을 담고 있는 고인돌이나 패총이 밭에 널려 있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마을에 사는 여성들은 신라시대 그녀들처럼 가배문화를 생활에서 꽃피우고 있다.

‘남도답사 1번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강진의 자연은 저자를 남도로 이끈 자석이었다. 확실히 남도 주민들은 TV를 별로 안 본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대신 할머니들이 윷놀이를 한다. 그런데 수를 놓은 윷놀이판을 손수 만들어 쓴다. 도시민들이 볼 땐 무지렁이 같아 보여도 삶 속에 격조가 있다. 저자는 강진을 통해 거대한 뿌리 남도를 만났다. “여성 국악인 함동정월의 삶을 연극으로 만드는 강진문화원 사업을 컨설팅하게 됐어요. 할머니로만 구성된 함동정월 연극팀이 제대로 연극을 올릴까 싶었는데 공연이 아주 우수했죠. 할머니들에겐 몸에 밴 신명이 있었어요. ‘이 뭐꼬’라는 화두가 책을 쓴 계기죠.”

남도를 다이아몬드 원석에 비유할 때 그 원석을 이루는 원소는 첫째가 자연, 둘째가 발효 맛 문화, 셋째가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살림예술, 지역예술이다. 저자는 모두 상생하는 공동체적 지역예술이 살림예술이라고 말한다. 도시예술은 아이에겐 예술이 입시 수단으로 전락했고, 어른에겐 고도의 전문성을 지녔지만 관객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강강수월래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 강강수월래를 춘 다음 크게 하나가 되는 대동의 경험은 어떤 전문 예술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지역예술, 살림예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살림예술은 예술활동으로 나만 살리는 게 아니라 마을 주민들과 마을 문화, 마을 공동체, 더 나아가 자연을 함께 살리는 문화죠. 살림예술은 또 살리고 나누는 문화입니다. 상생 속에서 삶을 고양하는 예술이죠. 마을 주민과 나누고, 다른 지역에 공연을 갈 수도 있고요. 지역에 준거를 두되 지역에 갇히지 않지요.”

땀 냄새가 물씬 나는 책을 읽자니,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왜 나는 이런 기미가 안 보이는지…” 했다는 저자가 마음을 짠하게 했다. 3년을 공들인 책에 대해 저자는 “잠 많은 나를 원망하면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원고를 끝냈다”고 했다. 낮에는 가배울 일을 하고, 밤에는 책 쓰느라 고단하면서도 뿌듯했을 그 시간의 무게만큼 강진‧해남의 지역예술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살림예술의 터전이 곧 농촌마을이라고 말한다. 마을은 박물관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마을이 사라지면 문화도 사라지는데 이미 많은 농촌마을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가 가배울을 이어가는 이유다.

“나는 여성학 박사지만 이분들은 맛의 박사죠. 유명한 한식요리가들보다 ‘아짐’(아줌마의 전라도 사투리)들이 바로 한식 박사입니다. 수공업적으로 자연 속에서 발효시키는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남도입니다. 김치와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마을에서 같이 김치를 담그는 문화는 시골에만 남아 있어요. 제대로 된 김치를 만들려면 3년이 필요해요. ‘슬로푸드 중의 슬로푸드’죠. 김치 회사에서 소비자들을 데려가서 김장 행사 하는데 그렇게 김장 문화를 유지할 수 있겠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명맥을 이어가려면 국가 차원에서 농촌으로 김장을 담그러 가는 여행을 활성화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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