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시스템 등 보완책도 인기 강의 수요 감당 못해
“취업 유리한 과목에 학생들 몰리는 사회적인 문제”
새 학기를 앞두고 대학가는 수강신청에서 ‘승리’하려는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선착순 ‘클릭 경쟁’에서 밀린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원하는 강의를 듣지 못해 억울할 따름이다.
서울에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채가희(23)씨는 하마터면 원하는 때에 졸업을 하지 못할 뻔했다. 마지막 학기에 필수교양 과목을 수강 신청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채가희씨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PC방까지 가서 수강신청을 했지만 상대적으로 4학년 정원이 적어 신청에 실패했다. 해당 과목 교수에게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도움이 될 만한 확인서를 써주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담당부서 측에서는 수강신청 방침이 우선이라며 확인서를 받아주지 않았고, 채 씨는 수강 정정기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정 기간에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여석을 확인했고 겨우 1자리가 나서 해당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다. 여석을 구하지 못했다면 돈을 내고 계절학기를 듣거나 한 학기를 더 다녔어야 했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학생 양수영(23)씨도 선착순 수강신청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양 씨는 며칠 전 수강신청을 위해 아침 일찍 PC방을 찾았다. 대부분 과목은 다행히 신청에 성공했지만 재수강이 필요한 과목은 수강 인원이 꽉 차 신청하지 못했다.
그는 “수강 신청 성공은 둘째 치고, 학교 서버를 더 안정적으로 구축했으면 좋겠다”며 “수강신청 버튼을 클릭하니 대기인원이 1500명이나 되더라.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너무 느리고 가끔 다운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선착순 수강신청 방식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최근 대학 측에서도 다양한 보완책을 내놨다. 과목별·학년별·단과대별로 수강신청 일자를 달리 해 접속자 폭주를 막는다거나, 장바구니 시스템을 도입해 수강신청 며칠 전 원하는 과목을 미리 선택해 놓는 방식 등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틀은 선착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기 과목은 강의 수요가 넘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실정이다. 장바구니 시스템을 채택 중인 학교에 다니는 김지영(23)씨는 “전공생이 적은 학과는 선착순 수강신청이어도 문제가 없지만 경영·경제학과 등 인기 전공의 경우 여전히 원하는 수업을 택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수강신청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강의를 선점하기 위해 각종 편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학생 백가경(22)씨는 “후배들, 친구들을 시켜서 동시에 네다섯 개 컴퓨터로 신청하는 친구가 있더라”고 말했다. 대학생 정유정(24·가명)씨도 “동아리방 컴퓨터로 몰래 매크로를 돌리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면서 수강신청에 공정하지 못한 방법이 동원된다고 귀띔했다. 백가경씨는 “똑같은 등록금 내고 어떤 학생은 한 학기 동안 웃으면서 다니고 누구는 억지로 꾸역꾸역 다니는 게 불공평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서버 안정을 위해 학년별로 수강신청 일자를 달리 했다. 그럼에도 원하는 과목을 못 듣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선착순 방법 이외에 다른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예컨대 성적순으로 신청 기회를 부여하면 이것도 민원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조건 하에 놓이려면 선착순이 가장 낫다는 설명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특정 전공·강의에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덕원 연구원은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충분히 개설하는 게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라지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선착순 시스템이 아닌 학교도 있다. 숙명여대는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한 추첨 방식을 채택 중이다. 학과에서 정한 제한인원을 고려해 수강신청을 한 후, 신청 인원이 초과되면 교내 기준에 따라 수강이 확정된다. 교양 과목의 경우 1순위는 학년순(4-1-3-2학년순), 2순위는 직전학기 이수학점 순, 3순위는 직전학기 성적순이다. 전공 과목은 제1전공자가 1순위, 복수전공 및 부전공자는 2순위다. 학생들은 신청 인원 중 자신이 몇 순위인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확정 시간표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정정기간에는 선착순으로 수강 과목 변경이 가능하다.
최근 경북대학교 학생이 만든 모의 시간표 웹 사이트 ‘크누크누’도 화제를 모았다. ‘크누크누’는 인기강의 목록, 강의평가 내용 등을 제공하며 모의 시간표 작성을 통해 재학생들의 수강신청을 돕는다. 대학생들이 수강신청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교와 학생 모두 보다 효율적인 수강신청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