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에 대한 감수성과 인권의식 높아져야
장기적 전망과 종합적 계획으로 실효성 높여야
여성폭력 근절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은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고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 1년간 성폭력 발생 비율이 소폭 줄어들었다는 정부의 조사 발표가 있었지만 성폭력 관련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성폭력 대책은 폭력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가해자 처벌 강화, 예방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신속한 대응과 가해자 처벌 강화는 낯선 사람에게 당하는 성폭력을 중심으로 한 대책으로 성폭력 사건의 대다수가 아는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년 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강간, 강간미수, 스토킹 등 중대한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 60% 이상이 아는 사람이었고, 성폭력을 상담하는 여성단체 등의 현장 전문가들은 일상 속 아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90% 이상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성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 따르면 경찰관 스마트폰에 신고 음성 파일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등 ‘112 스마트 시스템’을 구축하고 성폭력 전담수사대를 전국 경찰서 52개에 신설했다. 올해는 성폭력 전담수사대를 126개 서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성폭력 예방교육 지원기관’ 운영을 통해 전문 강사 양성과 교육 콘텐츠 개발을 통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2015년까지 초·중·고등학생용 성인권 교과서 개발 등 교육의 실효성을 높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올해 7월부터는 예방교육에 대한 정량적 평가뿐만 아니라 전체 참여율, 고위직 참여율, 강의 만족도 등 정성적 평가까지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16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 범죄에 대해서 집행유예를 배제하고, 지능형 전자발찌 시스템 구축 등 처벌을 강화했다. 피해자의 지원과 회복을 위해서는 통합지원센터 등의 시설을 확대하고 의료비와 무료 법률 지원을 확대했다. 또한 폐쇄회로(CC) TV를 2015년까지 1만1285개를 추가 설치하고 2017년까지는 전국 230개 시·군·구 모두에 통합관제센터를 구축해 안전 인프라를 확충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 같은 일련의 대책으로 성폭력 재범률이 감소되는 등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26일 정부가 발표한 ‘성폭력·가정폭력 방지 종합대책 2014년 추진계획’에 따르면 2013년 성폭력 미검률은 11.1%, 재범률 6.4%로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지난해 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지난 1년간 성추행, 강간 발생 비율이 1.5%로 2010년 2.9%에 비해 낮아졌고, 평생 발생 비율도 19.6%에서 10.2%로 낮아졌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성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담긴 성폭력에 대한 관점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사무국장은 “성폭력 대책에 담긴 정부의 관점이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을 ‘4대악’의 ‘악’으로 접근할 경우 잔혹한 강간 같은 특별한 형태의 범죄만 성폭력으로 인식되고,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는 피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최 국장은 “지난 1년 동안 4대악 척결 정책이 과연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성폭력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높였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형량 강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초범인지, 합의했는지 여부에 따라 집행유예가 좌우되고 여전히 남발되고 있다”며 입법을 통해 형량만 높일 것이 아니라 양형 기준에서 피해자 의사 확인이나 가해자의 반성이나 합의에 대한 질적인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예방교육도 교육의 질과 실효성 확보에 대한 요구가 높다. 의무교육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교육이 ‘통합적 인권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교육 시간이 줄어들거나 특성 없는 교육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성폭력 관련 정책이 강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내놓는 즉각적 대응과 선언적 측면의 내용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장기적인 전망으로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반여성폭력 운동 주체들과의 거버넌스(민관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 국장은 “정부가 성폭력 관련 정책을 실행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시민들이나 시민단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며 “성폭력 지원체계에서 민관이 담당하고 있는 각각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