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창녀’ 찾기 프로젝트… 성과 여성 통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성폭력, 성매매 등 사회적 이슈들이 불거질수록 오히려 여성들의 행동반경이 제한되고 위축되는 것을 보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사회적 문제들, 특히 성과 관련된 대책들은 ‘통제’와 민감하게 연동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연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고 제한할 것인가는 현실적이고도 정치적인 사안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성별이나 계급 등이 민감하게 작동하기 마련이다. 성폭력이 이슈화되면 여성들은 옷차림, 밤길이나 술자리 피하기 등 행동거지를 더욱 조심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러한 관습화된 통념과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성폭력이 심각해지자 그 대안으로 여성들의 통금시간을 정해 늦은 밤에는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당시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는 “피해자인 여성들을 못 나오게 할 게 아니라 가해자인 남성들에게 통금을 적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듯 성별과 행위자의 위치를 바꿔보면 부당한 전제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해외 원정 성매매를 다루는 지배적 시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정 성매매 이슈를 다룬 한 뉴스에서는 500달러만 가지고 호주에 입국하려던 여성이 추궁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 여성은 적은 돈으로 여행을 온 가난한 여행자, 성을 파는 여성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성의 입국을 거부한 호주 정부에 대해 자국민이 당할 인권유린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사들은 일제히 ‘나라 망신, 외교부 강제 송환 검토’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인신매매, 한국 성매매 실태와 정책의 문제를 언급할 뿐이었다.
여성을 통제하는 이런 상황을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한국 남성의 해외 원정 성 구매 행위 또한 국제적 망신이긴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이에 국내외적으로 남성의 출입국을 엄격히 제한하는 강도 높은 정책을 추진한다면 어떨 것인가? ‘해외 원정 성 구매자 강제소환 예정’이라는 정책을 내건다면? 국내외 공항에서는 수많은 남성들이 출입국을 하네, 못 하네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성을 파는 여성을 잡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성을 구매할 확률이 높은 남성 위험군이 지목될 수 있다. 첫째 많은 돈을 가지고 나가는 남성, 둘째 골프를 치러 가는 남성, 셋째 남성끼리만 떼거지로 출입국하는 경우 등. 이들은 ‘타깃 집단’이기에 공항에서 특별조사를 받을 수도 있고 입국 거절이나 강제소환이 될 수도 있다.
공항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입·출국 시 남성들은 줄줄이 서서 자신이 절대로 성을 구매하지 않을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입증 전까지 공항에 있는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 구매자로 의심받는 존재가 된다. ‘일반’ 남성들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실제 ‘성 구매자’를 원망하면서도, 혹시나 남들이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해서 옷차림, 행동거지를 점검하며 전전긍긍할 것이다. 낙인의 효과다.
일부 ‘일반’ 남성들은 이러한 사태에 정면 반발하며, 이동권을 제한하는 대(代) 남성 통제, 남성 전반을 성 구매자로 취급하는 인권 탄압이라고 분연히 떨쳐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성 구매자 통제로 인해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지표들이 줄을 잇는 상황, 남성들이 공항에 억류된 채 추궁을 당하는 장면들, 입국을 제한하는 호주 정부가 한국 남성을 모욕하는 실태, 억울한 남성들의 사연에 대한 특종 보도로 국민의 울분을 토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국제적 분쟁,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가 수행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을 직접 통제하는 이런 정책이 과연 용납될 수 있을까? 그러나 여성에게 이것은 그대로 현실이다. 호주 공항에서 단지 500달러만을 가졌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절되는 상황에 항의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은, 여성의 행동반경이 제한되고 인권유린이 발생하는 현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몇 년 전 한 미술관에서 진행된 ‘창녀’ 찾기 프로젝트(‘여기 창녀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창녀를 찾으면 120만원을 드립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창녀가 여기에 있다’는 말과 더불어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여성들은 의심받고 통제된다. 해외 원정 성매매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보도는 ‘창녀 찾기’의 공항판인 셈이다. 이렇듯 ‘원정 성매매’ ‘나라 망신’이라는 이슈 아래 가장 만만하고 가장 열악한 여성의 인권이 통제되고 기만당하는 현실은 외면되고 있다.
왜 성이나 폭력과 관련된 문제가 일어나면 피해자인 여성이 비난받고 여성 전반이 통제돼야만 하는지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문제들은 성폭력의 피해자 또는 성매매 당사자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여성의 야간 통금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발상 만큼이나, 원정 성매매를 막기 위해 여성의 출입국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통제다. 그 자체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어떠한 언어로 규정하고 누구를 타깃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는 정치적 사안이다. 정치적 힘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젠더 민감성,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성 문제를 둘러싼 오래된 통념과 문화적 전제들은 너무나 만연돼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각조차 무뎌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통제하는 통념과 전제들을 전환하기 위한 가장 기본 작업은, 성별에 따라 질문의 방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많은 문제들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사회 곳곳에 녹아 있는 차별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이러한 작업은, 모든 사안에 필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