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변칙증여상속은 단순히 ‘유명한’ 정도를 넘어 ‘재계

의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진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

다’라는 삼성의 광고문구가 무색치 않을 정도의 놀라운 기법을 새

롭게 개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

용씨에게 엄청난 재산과 그룹의 경영권까지 물려주면서 단돈 몇푼으

로 납세의무를 면제받으려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건희 회장은

재산만 물려준 것이 아니라 ‘탈세의 비법’까지 상속하려 한 것이

다. 정말 못말리는 자식사랑이다.

이재용씨는 지난 95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원을 증여받아 삼

성의 비상장 계열사 에스원 주식 12만주를 샀고, 그 직후 에스원이

유상증자되면서 4백억원 이상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이때 이재

용씨는 60억원에 대한 증여세 16억원만 냈을 뿐, 주식상장에 따른

시세차익에 대해선 단 한푼의 세금도 물지 않았다. 그리고 96년에는

중앙개발과 제일기획의 사모전환사채(CB)를 사들임으로써 이 두 회

사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특히, 중앙개발의 경우 삼성생명의 제2대주

주(1대주주는 이건희 회장)로서, 그룹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

사하고있는 회사로서, 이재용씨는 이렇게 하여 자연스레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세습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되던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인수자가 이재용씨를 포함한

이건희 회장의 네자녀들과 삼성의 임원들, 즉 특수관계인들이었다.

99년 2월, 이재용씨가 1주당 7천1백50원에 구매한 삼성SDS의 당시

장외거래가격은 5만4천원, 현재는 14∼15만원 수준으로 이재용씨는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재산을 단한푼의 세금도 물지 않고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는 상속증여세법 제42조 제2항 및 동법 시행령 제31조

의 5에 의해 분명한 증여세 과세 대상이고, 이미 증여세 신고 및 납

부기한이 3개월이 지났다는 점에서 명백한 증여세 포탈혐의가 제기

된다. 정말 가공할 만한 규모의 탈세이다. 자식사랑도 이정도면 가히

‘지극정성’이다.

한데 지금 이 ‘집안(?)’은 난리가 났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자동차의 부채처리문제로 삼성생명주식 4백만주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주식가격 평가와 삼성생명의 이익분배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

을 사고 있고,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자 이재용씨의 외삼촌인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조세포탈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어 있다. 특히, 홍석

현 사장의 탈세혐의의 경우 ‘언론탄압’, ‘표적수사’ 등등의 논

란이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이재용씨의 증여세 탈세혐의까지 제기

됨으로써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에 봉착

해 있다.

이제 공은 ‘국세청’과 ‘검찰’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이다. 청와

대 대변인, 장관 등이 나서서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국세청

이나 검찰이 일관된 원칙과 기준에 의거해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진

행하는 것이 국민들에겐 훨씬 더 큰설득력을 지닐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국회 정무위 의원들이 이들을 국감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거부했다. 재경위 의원들은 시민단체의 국

감감시를 불허했다. 재벌들 앞에선 한없이 약해만 지는 정치권과 어

정쩡한 정부의 태도는 재벌의 ‘뒤틀린 자식사랑’이 또다시 면죄부

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재계의 교과서’에 탈세의 기법만이 아니라 ‘면죄부’를 얻는 선

례까지 남기게 된다. 정말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홍일표/ 참여연대 조세팀 간사'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