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빙상계가 잇단 성추행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세계선수권을 마친 직후 김지선(27), 이슬비(26), 신미성(36), 김은지(24), 엄민지(23·이상 경기도청)로 구성된 여자 컬링대표팀 선수들은 코칭 스태프의 부당한 행위를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해 파문이 일었다. 소치에서 ‘컬링 열풍’을 일으킨 후 세계선수권 4강 쾌거를 이루고 일어난 상황이라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경기도청은 3월 28일 컬링 여자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최모(36) 코치의 폭언·성추행·포상금 기부 강요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 해임 조치했다. 외부와 연락을 끊었던 선수들은 1일 조건없이 팀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경기도청은 “경기도체육회 이태영 사무처장이 선수들과 선수 부모를 만나 협의한 결과, 사퇴서를 일괄 반려처리하고 선수단 운영을 조기에 정상화하는 데 합의했다고 1일 밝혔다. 경기도청은 후임 코치로 여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직장운동부 감독과 코치를 대상으로 전문가를 초청해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사후약방문’ 처방을 내놓았지만 ‘무개념 코치’ 한 명의 행동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여자 컬링대표팀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소치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박승희 선수의 소속 팀인 화성시청 빙상팀에서도 성추행 논란이 불거졌다. 3월 31일 경기지방경찰청과 화성시 등에 따르면 박승희 선수를 제외한 화성시청 소속 선수 2명은 3월 20일 전 감독인 A씨를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선수들은 “A감독은 자세 교정 등을 이유로 엉덩이 등의 신체 접촉을 했다. 또 먹다 남은 얼음을 옷 속에 넣었고, ‘재계약을 하고 싶으면 애교 좀 부리고 아양도 떨어서 나한테 잘 보이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선수들은 지난해 11월 같은 이유로 A감독에 대한 감사를 화성시에 요구했지만, 애매한 지침만 담당 부서에 내리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A감독은 3월 5일 선수들을 무고죄로 고소해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화성시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올해 초 A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았고 A감독을 고발한 선수 2명과도 계약을 유보했다가 지난 7일에야 재계약했다.
방상계의 잇단 추문으로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는 4월 한 달간 빙상아이스하키·컬링·스키·바이애슬론·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등 7개 동계스포츠 종목의 경기단체에 대해 특별감사에 착수한다고 1일 밝혔다.
문체부의 감사 착수 배경은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중 불거진 안현수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 탈락 관련 의혹, 성추행 전력 쇼트트랙 장비담당코치 선임 논란, 여자컬링팀 코치의 성추행으로 인한 선수들의 전원 사퇴 파동, 루지 국가대표 코치의 선수 폭행 사건 등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감사는 지난해 시행된 체육단체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와 달리 국가대표 선발 과정, 시설 및 장비 운영의 문제점 등의 초점에 맞춰 진행된다.
빙상계 한 고위 관계자는 “지도자들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다. 아직도 ‘내 새끼 내 맘대로 못 하면 어떻게 훈련을 시키냐’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빙상계가 변해야 한다”면서도 “체육계 전반에 걸친 문제다. 빙상계만 표적을 삼을 문제는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선수 출신의 한 여성 지도자는 “체육계 전반에 걸친 성폭력 사례는 심각한 수준이다. 피해 당사자들은 큰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 앞에서 반항 한 번 못하고 체념할 수밖에 없다”며 “남성 지도자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문제를 일으킬 경우 연맹과 협회 차원에서 엄하게 처벌 해야 근절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