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사 부인 13년, 영부인·상원의원 각 8년, 국무장관 4년 “첫 여성 대통령 될까”

 

힐러리 클린턴(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2009년 2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여성의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free prescription cards sporturfintl.com coupon for cialis
힐러리 클린턴(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2009년 2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여성의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free prescription cards sporturfintl.com coupon for cialis
ⓒ뉴시스‧여성신문

힐러리 로댐 클린턴(1947∼)은 소녀 시절부터 정치가의 꿈을 키워 실력을 쌓고 정치가와 결혼해 딸을 하나 키우면서 13년의 주지사 부인, 8년의 영부인, 8년의 상원의원, 4년의 국무장관의 경륜을 거쳐 역사를 바꾼 탁월한 여성 정치가다.

힐러리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69세로, 로널드 레이건이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와 같은 나이다. 혹자는 이미 힐러리를 미국의 희망, 루스벨트에 필적할 만한 인물로 묘사하기도 한다.

시카고에서 방직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는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의 가능성을 성취하도록 장려했다. 남동생 둘과 함께 자라면서 수영, 야구 등의 운동을 즐겼고, 책 읽기를 즐겼으며 걸스카우트 활동도 활발히 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우등생으로 학생회와 학교 신문사에서 과외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역사교사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감리교회 청년부 담당 전도사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의 사회참여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대선 때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자신이 좋아하는 대통령 후보를 도우며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에는 명문 웨슬리대에 진학해 정치학을 전공했고 1학년 때 공화당청년회장이 됐다. 마틴 루서 킹이 암살된 후에는 학생회장으로 학생 데모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때 많은 동창들이 이미 힐러리는 언젠가 미국의 여성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했고, 대학 졸업식에서 학생대표 연설을 했을 때 이에 감동한 여학생들이 7분 동안 기립해서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힐러리는 아동학대 문제, 이민노동자 주거위생, 건강‧교육 문제 등을 연구했다. 이때 빌 클린턴을 만나 함께 대선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한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닉슨을 탄핵하는 과정에서 의회 변호사로 잠시 일하다가 시골 아칸소주로 이사해 아칸소 법대 교수로 강의하다가 클린턴과 결혼을 한다.

빌 클린턴과 결혼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결혼한 후에도 그녀는 아동가족옹호단체를 공동 창설하고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임명으로 법률서비스공단의 첫 여성 회장이 됐고 저명한 로즈법률회사의 첫 번째 여성 파트너로 아동학대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무료 변호를 담당했다.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가 되자 힐러리는 과거의 한 발 물러선 내조형 아내상에서 벗어나 남편과 정치적 동지로서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저소득층 지역에 의료시설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고, 아칸소의 교육체계를 개혁했고, 월마트 등 대기업의 이사로서는 여성의 대기업 임원직 진출을 도왔다. 미국변호사협회 여성위원장으로 법조계의 성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했다.

남편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힐러리는 자기의 직업을 유지한 첫 영부인으로 많은 공직을 임명하기도 했다. 처음 그녀가 주도했던 클린턴 보건관리계획은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국민의 거부감도 강해서 지지도가 3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과 노력은 인정받게 됐다.

백악관을 나와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힐러리는 여성의 세력화에 명확한 의식을 갖고 전 세계의 여성운동을 독려해서 세상을 변화시킨 진정한 여성 정치가다.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며, 인권은 여권임을 강력히 주장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미국 국민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남편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다. 하원이 대통령을 탄핵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녀는 TV에 출연해 단호한 모습으로 “어떤 결혼이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나는 우리의 결혼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낀다”며 남편의 곁을 지켰다. 이때 힐러리의 지지도는 70%로 급상승한 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국무장관으로 힐러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갈등 없이 팀원으로 조화롭게 일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전 세계 여성들의 세력화와 굶주림의 퇴치를 위해 일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여성의 권리와 인권이 미국의 안보 이익의 핵심임을 주장했다. 그녀는 66세에 건강문제로 물러난 뒤 남편과 딸과 함께 클린턴재단에서 여성과 아동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총명하고 열정적인 힐러리의 삶은, 그가 속한 사회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탁월성에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차세대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할 여성 인재를 발굴·양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