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 ‘굳세어라 금순아’ ‘장밋빛인생’ 속 ‘3순이’
드라마 속 여성캐릭터 흥행 공식 바꿔
“여자는 무조건 어리고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결혼정보업체 직원의 말에 김삼순이 쏘아 붙인다.“니들 남자들은 안 늙니? 뱃살 늘어져서 영계 찾으면 비참하지? 그리고, 뚱뚱하다고? 그래. 내 일이 케이크랑 초콜릿 만드는 건데 안 뚱뚱하고 배겨?”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한 장면)
2005년 방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MBC)를 필두로 드라마 속 솔직 당당한 여성캐릭터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최고 시청률 50%를 돌파하며 이른바 ‘삼순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많은 여성들이 “내 얘기”라고 입을 모으며 삼순이 캐릭터에 감정 이입했고, 김삼순을 연기한 김선아는 물론 상대 배역인 현빈(김진헌 역)은 이 작품을 통해 ‘국민 남친’으로 거듭났다.
파티쉐로 활동하는 당당한 전문직 여성 김삼순은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강명석 문화평론가는 “진헌이 자신의 어머니께 삼순을 소개하며 ‘자기 손으로 성실하게 일해서 그 돈으로 꿈을 키우는 여자.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건강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명쾌한 여자’라는 말을 한다. 이는 남성들이 가진 ‘편안한 여자친구’라는 여성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 7, 1. 제834호)
전문가들은 ‘삼순이’로 상징되는 여성캐릭터의 진화를 당연하다고 여겼다. 변화한 시대와 여성상을 반영했다는 이유다. 김종휘 문화평론가는 “평범하고 뚱뚱한 노처녀가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걸 보면서 시청자들이 심리적 위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훈순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보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5, 7, 1. 제834호)
‘삼순이’뿐 아니다. 2005년 브라운관에는 억척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다. MBC ‘굳세어라 금순아’ KBS ‘장밋빛인생’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각각 금순이, 맹순이였다. 이들은 삼순이와 함께 ‘3순이’로 불리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결혼 직후 남편을 잃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나금순(한혜진 분)을 등장시켜 불행한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인생의 목표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아들의 양육권을 두고 시부모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장면으로 ‘호주제’라는 사회적 사안까지 드라마 속에 포함시켰다.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최진실 분)는 억척 아줌마의 대명사로 그려졌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고 멀쩡한 옷을 버리는 걸 참지 못하며 살아가는 전반부, 남편의 외도로 배신당한 절망을 그린 중반부, 다시 가족애를 회복하고 삶을 마감한 후반부에 걸쳐 아줌마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맹순이는 바람을 피우고도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 육탄전을 벌이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혼은 안 한다”고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삼순과 금순은 드라마 말미에 부자 남성과 이어지는 기존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답습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모니터연구부장은 “특히 금순은 이혼한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고는 홀로 서기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보여줬다”며 “오히려 여성의 성적욕구를 표출한 삼순의 언니 이영(이아현 분)과 이혼 사실과 아들에 대한 모성을 당당하게 제기한 금순의 손위 동서인 성란(김서형 분)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2005, 12. 23, 제 858호)
그럼에도 ‘3순이’는 성공했다. 이들의 성공은 기존 드라마에서 순종적이거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던 여성캐릭터가 당당하고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져도 흥행할 수 있다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후 드라마업계는 제2의 ‘3순이’들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1970년대 여성 패션디자이너의 삶을 다룬 ‘패션 70s’,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한 여성이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내용의 ‘인순이는 예쁘다’, 병원에서 초년병 외과로 일하는 전문직 여성의 성장을 그린 ‘외과의사 봉달희’,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엄마가 뿔났다’, 비정규직임에도 당당하게 요구, 쿨하게 행동하는 김점순(미스김)의 이야기를 다룬 ‘직장의 신’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