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온 국민이 지키는 보물입니다”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으로 문화재계가 ‘엄동설한’을 맞고 있다. 취임 100일을 넘긴 나선화(65) 문화재청장의 발걸음도 더 바빠졌다. 국보1호 숭례문의 부실 복구 책임을 지고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8개월 만에 전격 경질된 후 후임에 역시 여성인 나 청장이 선임됐을 때 안도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장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적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나 청장은 수수한 외모, 편안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부드러우면서 강단 있는 목소리는 전형적인 위기형 리더였다. 우선 지난달 주요 업무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그가 “국민이 문화재로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문화재 수리 복원의 부실 문제가 불거진 후 샅샅이 조사가 이뤄졌어요. 멍석 크게 깔아놨으니 모두 보고 느낀 대로 잘못된 건 다 쏟아내자고 한 거죠. 4월 중순이면 감사원 결과가 발표될 거고요. 뇌물 수수 혐의자 중 검찰로 송치된 직원 2명은 검찰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발령을 했고, 비위 사실이 통보된 직원들은 문책성 전보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신응수 대목장과 홍창원 단청장은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현재 문화재 수리체계 혁신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우선 문화재 수리기술 자격제도 개선을 위해 자격증 대여‧부실시공 처벌 기준 강화, 직무능력표준 개발에 나서고 문화재 수리공사체계도 전면 개편한다. 세부안은 의무 감리 범위 확대로 부실 공사를 원천 방지하고, 입찰 업체 등급화로 중요문화재 입찰 참가 자격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문화재 수리분야 기초연구를 강화하고 전통기술‧재료 연구의 전략적 지원, 문화재 복원용 목재 공급 체계 개선에도 나선다.

문화재청의 인적 혁신에 대해 그는 “문화재 업무가 전문성과 특수성이 강해 바깥에서 볼 땐 폐쇄된 공간으로 보일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유사 기관과 폭넓게 교류하고 소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 청장은 “문화재 관리는 항상 5분 대기조, 119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어디가 터졌다, 갈라졌다 하면 빨리 보수를 해야 생명력을 이어가요. 아픈 환자 돌보는 것처럼 세심하게 가꿔야 원형을 유지할 수 있죠. 숭례문 사건이 방화로 터진 데서 알 수 있듯 문화재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국민 의식교육도 절실합니다.”

-숭례문 부실 복구로 문화재 복원 시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논란도 불거졌는데요.

“지금 생산되지 않는 전통 재료도 많아요. 전통 기법으로 하려면 재료를 다시 만들고, 검증도 새로 하고, 기술도 숙달돼야 합니다. 현재의 과학기술이 접목돼야죠. 복원은 결국 21세기에 하는 복원 아니겠어요? 나무를 베서 건조하는 데만 최소 3∼4년이 필요한데 그런 준비 없이 전통을 고집한 것이 무리였어요.”

-숭례문 국보 1호 해제 논란이 재점화됐는데….

“다시 공론화해볼 수는 있지만 지정 번호를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결론은 이미 난 상태입니다. 2005년 이후 문화재청의 일관된 입장인데 부실 복원 이후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어요. 국보 1호는 사실 행정·관리 번호에 불과해요. 이런 인식을 넓히면 번호를 해제하거나 해제하지 않거나 하는 문제는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으리라고 봐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물막이댐 설치 여부가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심의 보류로 연내 설치가 불투명한데요.

“공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급하게 밀어붙일 일은 아니고 언제라도 좋은 대안이 있으면 논의해보자는 자세로 접근하고 있어요.”

문화재계가 어수선한 시기에 중책을 맡은 그의 심경이 궁금했다. 그는 “사실 여러 차례 고사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여성인 변 전 청장이 경질된 뒤라 남성이 맡기보다 여성이 맡는 게 좋겠다는 여론이 있었다. 이를 외면하긴 곤란했다는 것이다. 또 조직에 속해 있지 않고 인간문화재들과도 얽히지 않아 ‘아무 데도 치우지지 않고, 현장을 꿰뚫는 외부 사람’ 같아 보인 그가 적임자로 떠올랐다. 그 역시 어느 순간 ‘내가 맡아야 할 일인가보다’는 결심이 섰다. 그는 “뒤에서 밀어대는 기운을 순간적으로 느꼈다”며 험한 시기에 중책을 맡은 속내를 밝혔다.

나 청장은 문화재청이 부실한 국가조직이란 이미지를 얻고, 구성원들의 자긍심에도 상처가 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미지를 쇄신하고, 문화재관리국부터 문화재청 시절까지 땀 흘리며 노력해온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해내겠다는 것이다.

재임 중 최우선으로 둘 정책이 또 하나 있다. 문화재 보존·관리에 국민 참여를 높이는 것이다. “문화재는 내가 입양한 아이”라는 인식을 확산해 문화재청이 지키는 문화재가 아니라 온 국민이 지키는 문화재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나 청장은 “문화재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 여기에 내가 관리하는 문화재로 인식을 바꿔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구경삼아 촬영한 사진이 관리 자료가 될 수 있어요. ICT를 활용하자는 거죠. 스마트폰으로 찍은 문화재 사진이 바로 문화재청에 오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구상이에요. 첨단기술과 국민 참여를 연계한 시스템으로 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게 이상적입니다. 그 기본 틀을 만들고 싶어요.”

문화재의 역사 가치와 미래 가치를 젊은 미래 세대에게 알리는 일도 그에게 지워진 짐이다. 이를 위해 SNS, 기능성 게임 등 젊은이들이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열악한 문화재청 예산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나 청장은 “한국의 경제력에 맞게 문화재청의 규모와 예산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아시아 문화의 미래 가치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문화재청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임기 중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정책은.

“문화재 안전과 문화재 수리 품질 향상에 정책의 최우선을 두고 추진할 계획입니다. 4월까지 야외에 노출돼 있는 건조물 문화재에 대해 전면 특별 점검을 추진하고 점검 결과를 반영해 문화재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것입니다. 또 자격증 불법 대여 방지, 수리업체 관리·감독 강화, 수리현장 공개 등으로 문화재 수리공사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여성가족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위안부 기록물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여성이 전쟁 피해자가 되는 역사가 인류사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1세기는 전쟁의 시대가 아니죠. 소통과 융합으로 새로운 문명으로 열어가는 문명 전환기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선을 긋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죠. 문화재청은 기록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해온 경험이 있어요. 그 경험을 잘 살려서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위해 여성가족부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그의 개인사로 이야기를 돌렸다. 중고교 시절 그는 ‘책 좋아하는 소녀’였다. 중학교 앞에 을유문화사라는 큰 서점이 있었는데 책방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서점 주인이 그를 예뻐해서 책을 빌려주곤 “아침에 학교 올 때 갖고 오라”고 할 정도였다. 미국 역사학자 에드윈 O 라이샤워의 ‘동양문화사’를 탐독했다니 독서량이 짐작될 정도다.

그는 이화여대 사학과에 진학해 한국미술사를 전공했다. 한국미술사학계의 거목인 진홍섭 전 이화여대 박물관장의 제자다. 스승을 빼놓고 그의 삶을 이야기하긴 어렵다. 진홍섭은 여성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1964년 이대박물관장으로 정식 부임하면서 바로 문화유적발굴조사단을 구성, 여대생 손으로 발굴 조사를 실행해 국내 최초 여성 발굴조사단을 만들었다.

서울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학예실장 등으로 35년간 재직했다. 1970∼1980년대엔 기자들에게 ‘특종거리’를 심심찮게 안겨줘 ‘산타 학예사’란 별칭으로 불렸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가장 처음 참여한 발굴이 남한지역 최고의 벽화고분인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신라벽화고분이다. 특히 한국 도자사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대박물관은 도자기 명품을 많이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최초로 조선백자 관요터를 발굴해 15∼16세기 조선백자의 생산기술과 운영체계를 밝혔고, 영암군 구림리에서 8∼9세기 도기 제작 가마터를 발굴했다. 그는 매장·동산·무형문화재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재위원을 거쳤고 한국큐레이터포럼 회장, 생명과평화의길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문화재 외길을 뒤돌아보며 그는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며 웃었다. 문화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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