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학생들 시국선언 [전문]

 

5일 오후 1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5일 오후 1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경희대 학생 164명이 5일 오후 1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정문에서 희생자 300여명을 낸 세월호 참사와 관련 “‘가만히 있으라’는 세상의 명령에 대해 경희대 학생들이 선언합니다”라며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시국선언을 제안한 김재섭 학생은 “수많은 사람들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을 바꾸며 추모했지만 거기서 끝났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고자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노예일 뿐이다. SNS 프로필사진이나 상태메시지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바뀔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번째 발언에 나선 김태홍 학생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두 달이 지나가지만, 사고 이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실질 소유주인 유병언 세모그룹 전 회장에) 5억원의 현상금이 걸렸고, 대통령은 해경의 해체를 약속했지만 아직도 제대로된 진상조사와 사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것 같다”며 “이윤을 지키는 국가, 인간을 잊은 자본, 위에서 내린 글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 누구하나 300명의 죽음을,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경희대 학생들의 시국선언문 전문. 

- 6월 10일 민주항쟁기념일에 부쳐 -

 4월 16일,  300명에 달하는 생명들이 우리가 TV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그것을 생중계로 지켜보았으며 언론, 해경, 대책본부, 정치권, 이 한국사회의 민낮을 보고 말았다. 한국사회는 침몰한 배에서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참혹한 사실 앞에 슬픔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분노했다.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는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었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약 60만명의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했으며,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양한 추모의 글들이 올라왔다. 어떤 사람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 혹은 동참했다. 또 다른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실명을 거론하고 가만히 있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 경희대 정경대학 4학년  용혜인씨는 국화꽃과 피켓하나를 들고 홍대거리를 행진하고 3만명이 청와대 뒤쪽으로 행진할 때 "청와대는 앞 쪽에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청와대로 가고자 했다. 그리나 지금 세월호 사고 이후 50여일이 지나고 있는 지금 언론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으며 기성 정치 세력들은 자기들을 뽑으면, 투표하면 안전한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강한 압박 없이는 정치인들의 약속들은 언제나 공수표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투표만으로 이 사고가 해결되는 것이라면 진작해 해결됬을 것이다.

 세월호사고는 안전은 뒷전이고 ‘이윤창출’에만 혈안이 된 이 사회의 전통 그 자체였다. 자본에게는 안전과 생명은 단지 비용일 뿐이었다. 수명이 지나 폐기처분되었어야 할 세월호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났다. 죽어가는 육신을 움직이는 근육들인 선원들은 저임금 비정규직이었다. 세월호는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서 무리하게 증축되었고, 화물을 과적했고, 평형수는 빼내어졌다. 자본의 탐욕에 의해 무덤에서 끄집어져 나온 세월호는 300여 생명의 한이 맺힌 무덤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는 의심받았다. 내 생명은 기업의 이윤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헀다. 이미 죽었던 세월호가 무덤에서 합법적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끝없이 규제완화에 나섰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이것은 역대 정권이 꾸준히 계승해온 문제다. 그렇기에 국가정책을 만들어오는 정치권력, 국회와 청와대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생명보다 이윤이 중요한 이 사회를 바꾸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유가족들과 전 국민 앞에 드러냈다. 국가는 문제해결 의지가 전혀 없었다. 보다 못한 유가족들이 직접 움직이고 나서야 진척이 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5월 16일 사고 발생 한달이 지나서야 대통령은 유가족을 만나서 사과했고 바로 그 다음날 17일 120명, 18일 100여명을 연행했다. 심지어 5월 18일은 1980년 광주가 있었던 그 날 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의 명령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들고 있던 것은 종이 한장과 국화꽃이었다. 그렇게 냉혹한 주말이 지나가고 나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렸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며 어떤것을 선택할지는 시민들의 선택이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다시는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성역없는 조사를 하자는 요구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생명, 안전보다 돈이 더 중요시 하는 사회, 전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극히 상식적이고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성역없는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규제완화를 멈추고 특히 안전규제의 강화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다. 시민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행동하는 시민들을 “정치적이다” “불순하다”고 낙인찍고 있다. 경찰은 일찍부터 유가족들에게 사복경찰을 붙였다. 진도에서는 질서유지를 위한 인원보다 정보과 형사들이 더 많이 있었으며 이후에 지속적인 사찰로 인해서 유가족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참사 초기 구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국가는 분노한 유가족들이 행동을 하려 하면 즉각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하고 있다. 가만히 있지 않기를 선언한 시민들이 집회를 열 때마다 수십 수백명의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국가는 모든 것을 잊고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모두 체포하겠다며 시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시계추는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오는 6월 10일은 민주항쟁기념일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신군부의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광주 시민들은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하다가 산화했다. 시민들은 5월의 광주를 잊지 않았다. 광주에서 마지막 까지 싸웠던 시민들이 있었기에 신군부는 마음대로 광주를 주무를 수 없었고, 이땅에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수많은 시민들은 광주를 끊임없이 기억하려 노력했다. 결국 87년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며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시민들은 기어코 거리에서 신군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렇게 518 광주민중항쟁과 수많은 민주 투사들이 기억되었고, 이들의 희생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한걸음 한걸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역사란 그렇게 발전해왔다. 잊으라 하는 사람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 앞에서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행동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 그리고 다시는 제2의 세월호를 만들지 않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추모하고, 기억하고, 분노하고, 행동할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과 구조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진상이 규명되는데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산 자의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가 단순히 기자회견 하나, 글 하나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는 이제 시작일 것이며 더 큰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가오는 6월 10일 거리에서 외치자.

산 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우리 경희대학교 학생들은 박근혜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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