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호정 ⓒ한국영상자료원
배우 김호정 ⓒ한국영상자료원

1996년 여름, 을지로 3가 냉면집에서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을 만난 것은 운명적으로 나의 마지막 작품 ‘침향’을 만들게 했다. 미국 이민을 떠난 지 10여 년 만에 소식도 없이 귀국한 그는 냉면에 열중하다가 반갑다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곧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고 또래의 정일성 촬영감독과 셋이 뭉쳐 작품 선정에 나섰다. 아무려면 60년대 충무로 노장들이 요즘 영화만큼 못 만들까. 원작은 내가 읽은 구효서의 소설 ‘나무남자의 아내’로 정하고 제작비는 영진공의 판권 담보 3억원을 지원받기로 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작품을 함께 했으며 같은 세대를 살아왔다. 세 사람은 동업 계약서를 만들어, 밑지거나 벌거나 책임을 함께 지자고 공증을 했다. 

사무실은 서울극장의 배려로 얻게 됐는데 김지헌의 주장으로 합동영화사(서울극장)에 제작·홍보·흥행을 맡기자고 제의했고 그 쪽에서는 3억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합의했다. 그때는 비디오 판권이 있어 3억~4억원에 거래되고 있어 우리는 합동의 투자를 가볍게 본 것이 큰 뒤탈을 불렀다. 영화의 제목을 ‘인간의 향기’로 정하고 캐스팅에 들어갔는데 쉽지 않았다. 잘나가는 배우들은 개런티가 수억원대에 이르렀고 평소 보아둔 얼굴도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청주대 제자 조민기가 여배우 한 사람을 소개했다. 그녀의 이름은 김호정. 무대 경험은 있었는데 영화는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조민기를 함께 캐스팅해야 했었는데 상대역 남자로 이세창을 굳이 찾느라 고심했다. 김호정은 얼굴이 여배우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지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다소곳한 아가씨였다. 그것은 청년 작가 이세창이 군복무를 끝내고 돌아와 전에 사귀던 여인들과 어딘지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게 했다.

 

영화 ‘침향(1999)’에 출연한 배우 김호정(왼쪽)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영화 ‘침향(1999)’에 출연한 배우 김호정(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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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김호정은 대사 처리가 정확해서 동시녹음 배우로서 손색이 없었다. 더욱이 음색이 아름답고 감정 처리가 완벽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밉지 않을 정도로 이 신인배우를 찍어놓겠다고 약속하고 크랭크인을 하게 됐다. 사실 무슨 러브 스토리를 찍는 것도 아니고 소위 문예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여배우의 미모 타령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평생 영화를 만들면서도 여배우가 예뻐야 한다는 사실을 잠깐 망각한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나에겐 이것이 109번째 작품이 됐는데 아직 단 한 번도 제작에 손을 대본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 쓰는 데까지 신경을 쓰며 연출 작업을 하게 되어 부담이 여간 큰 게 아니었다. 제작과 감독을 늘 함께 하던 신상옥 감독이 우러러 보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촬영지는 해남 대흥사 주변이었는데 손끝이 얼어붙는 혹한 속에서 이뤄졌다. 더욱이 대나무 숲길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선 김호정은 처절한 표정까지 지었다.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편집실 작업을 시작했는데 합동영화사 사람이 들여다보고 베드신이 부족하다고 불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시중의 영화처럼 여배우를 마구 벗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투자액을 돌려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는 고심 끝에 비디오 판권 2억원과 사재 1억원을 합쳐 극장에 돌려주었다. 그리고 영화는 상영할 극장도 없이 떠돌게 됐다. 열심히 연기한 김호정에 대한 평가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영화 제목은 ‘침향’으로 했는데 김호정의 데뷔작은 향기처럼 물속에 가라앉았다. 이번 임권택 감독의 신작에 김호정이 다시 데뷔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연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 합니다>

김호정

1968년 서울 출생.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1991년부터 연극배우로 활동, 영화는 1999년 김수용 감독의 ‘침향’으로 데뷔, 이후 1~2년에 한 편 정도로 연극과 영화에서 꾸준히 활동을 해오며, 최근 임권택 감독의 ‘화장’에서 주연 맡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1995), 최우수여자연기상(2001)을 받았고, 영화에서는 2001년 ‘나비’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 받음. 

* 김수용 감독의 그리운 여배우는 이번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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