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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기가 책읽는 즐거움을 뺏을 수 있겠습니까?"

박완서/소설가

계간지 '실천문학'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농담’

이라는 장편소설인데, 올해는 그 작품에 온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건강은 아주 좋습니다. 경기도 구리로 온 지 꽤 됐는데,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아주 좋습니다. 다시 도시로 들어가 살고 싶지 않습니다.

새 천년을 맞으며 활자문화의 위기라느니 무척 호들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활자문화라는 것은 ‘호들갑’하고는 상치되는 무엇이라

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살아남을까 하는 문제는 장기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문제지만, 저는 책 읽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세상은 상상하

기 어렵습니다. 전달방법은 다르지만 문학적인 것이야 살아남지 않

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알짜정보는 책에서 찾고들 있지않

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 천년, 문학의 위상에 대해 낙관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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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소설쓰는 참재미를 느껴요"

이경자/소설가

새해 접어들어 심각한 고민 한가지가 생겼어요. 올해로 프로 작가

가 된 지 30여 년이 돼 가는 저는 요즘 소설을 써서 밥을 먹고살아

야 하는 문제와 문학은 유행을 좇아 상품을 제작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학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돼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유행을 따르다보면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

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와 같은 생각들이 점점

소수의 기념품처럼 남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나는 이런 시대에 작가로서 대중들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불특정 다수가 책을 사주는 것으로 생존

할 수 있는 작가로서 대중의 욕구와 내 작업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어

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가로서 내 개성을 포기하고 타협을 강요받

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새해 벽두부터 저를 놓아주

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소설 쓰는 참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작가인 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 작품들도 나름대로 생명을 가지고

운동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낀다는 얘깁니다. 이

렇게 재미있게 일을 하는데, 책이 안 팔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은 늘 도사리고 있지만, 결국 소설은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

문에, 인간을 객관화시키면서 인간의 기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생명은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가

지고 있습니다.

저는 70까지 소설을 쓸 계획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건강관리에도 최

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올해 출판사와 3권의 책 출간은 약속했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고, 장편소설 한 권, 에세이 한 권 정도 낼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저는 새 천년에도 제 인생의

목표인 ‘천천히’와 ‘욕심 버리기’를 변함없이 실천할 계획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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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문학에서 여성문학으로 터닝포인트 넘어섰다"

김혜순/시인

뉴 밀레니엄이다 뭐다 떠들썩한 연말이었지만, 저는 몸도 좋지 않

고 크게 달라질 것 없으리라는 생각에 그냥 불끄고 잤습니다. 광화

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는 얘기는 신문에서 봤지요. 그리고 사

실 둘러보아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

단위로 나누어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올해 출간계획이 어떻다

는 구체적인 계획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열심히 시를 쓰고

모으고 있는 중이라는 것만 밝히겠습니다.

저는 인터넷 상의 문학이 본격문학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활자매체는 나름대로 독립성이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통신

에 올린 글들도 결국 책으로 출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위 사이

버문학들은 고급스럽고 사유를 바꿔줄 만한 언어를 생산하지 못한다

고 봅니다. 아직까지는 익명성을 무기로 문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

정적 기능을 하고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문학을 돌아보면 분명한 성과가 있습

니다. 그 이전까지는 아버지 문학이 기승을 부렸지만, 90년 말에 접

어들면서 많은 여성 시인들이 등장했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여

성 시인의 역사는 일천하기 그지없었지만, 90년대 늘어난 이 여성

시인들의 저력을 바탕으로 이제 본격 여성문학의 시대가 열리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2000년은 아버지문학에서 여성문학으로

터닝포인트를 넘어선 시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

기는 그것을 확인하는 세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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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즐기는 방식 달라진 것 인정해야"

은희경/소설가

새 천년이라 특별히 생각하는 것은 없어요. 지난 해 온전히 쉬면서

이제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올해는 연재했던 작품을 책으로 묶어

내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중·단편을 쓸 생각입니다.

그리고 새 천년에는 ‘여성작가’로 그만 불렀으면 좋겠어요, 작가

가 여성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많은 오해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품으로서가 아니라면 어떤 이익도 편견도 싫어요.

저는 넓게보아 제 자신을 낙관주의자로 생각합니다. 어떤 기준에

맞추어 이게 옳다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다양한 움직임과 목소

리가 어우러지다보면 다 잘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소설가로서 소설이 안 팔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사회가 다양화하면 관심도 다양해지고 즐기는 방식도 다

양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학만이 유일한 지적유희의 도구가 아

니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가능

성을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찾습니다. 지난 세기 가장 관심을

끈 아마존의 성공을 보면 종이책의 기능, 순수문학의 역할은 여전

히 남아있다는 낙관을 품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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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지난 천년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공지영/소설가

정말 요즘은 조용히 지난 천년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소설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내고 나서 ‘방학을 갖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 방학을 조금 더 연장하고자 합니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남은 생을 진실되게 살기 위해서라도 그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생

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난 연말 사람 안 만나고 집에서 내가 살아

온 모든 생애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과연 페미니스트였나 반성되더군요. 내 맘을 뒤져보니

봉건적인 것도 많고 책임 못질 얘기도 많이 한 것 같고. 또 내가 정

말 쓰고 싶어서 글을 쓰나, 밥 빌어먹는 수단 삼아 사람들에게 거짓

말하는 것 아닌가, 한 번 쯤 인생에서 멈추고 돌아봐야 할 때가 아

닌가, 그래야 정말 새로운 마음이 돋아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다 영영 글을 못 쓰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지요. 하지만 이런 반성이 끝나야 미래에 대한 전

망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새 천년 들어 너나 없이 디지털이다 인터넷이다 떠들지요. 저는 컴

맹이고 아직은 활자로 된 책 읽는 재미가 너무 크고, 통신소설을 읽

으면 눈이 아프고 재미가 없어요. 아이러니컬한 건 활자매체의 위기

운운하는 사람들이 다 활자매체에 있는 사람들이예요. 자기 비하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저는 지난 3, 40년을 돌아보면 문학의 질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절

대적인 독자 수는 늘었다고 봐요. 이제 중요한 건 컴퓨터가 줄 수

없는 진실을 제공하느냐가 관건이지 매체 환경의 변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책을 얼마나 쓰고

있나 반성해야 합니다.

'최이 부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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