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하루 이한우 지음, 김영사 펴냄
'왕비의 하루' 이한우 지음, 김영사 펴냄

언젠가부터 왕비들이 바빠졌다. 왕은 그저 허수아비일 뿐 왕비가 실세인 경우도 허다하다. 과거 사극의 왕비들이 곱디고운 자태를 뽐냈다면, 요즘 왕비들은 말 그대로 거침이 없다. 몇 년 전부터 ‘퓨전’을 표방한 TV 사극 혹은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곱디고운 왕비, 아니면 거침없는 왕비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 최근 출간된 ‘왕비의 하루’를 보면 두 가지 모습 모두 정답이다.

‘왕비의 하루’는 왕에 가려 드러나지 않던 왕비들의 삶을 복원한 책이다. 책을 보면 왕비는 왕에 가려졌을 뿐 실질적인 권력자나 다름없다. 왕비의 정치력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두 곳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적이자 동지인 후궁들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왕자 생산 여부에 따라 힘의 균형추는 왕비에게 혹은 후궁들에게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왕권에 도전하는 친정과 가문을 받아주느냐, 내치느냐도 왕비 하기 나름이었다.

왕 못지않은 권력을 쥐고 있던 왕비가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다. 신덕왕후는 태조의 두 번째 부인으로 조선 건국에 한몫한 강단 있는 여인이었다. 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등 신의왕후 소생 여섯 아들을 제치고, 그것도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자에 앉힌 것은 모두 신덕왕후의 정치력 덕분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이 일어나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었지만, 왕이 된 이방원마저 신덕왕후가 죽을 때까지 눈치를 봤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다.

조선의 충과 효를 미덕으로 한 국가였기에 왕의 어머니, 즉 대비의 권한이 막강했다. 대표적인 대비는 세조의 비이자 예종의 어머니였던 정희왕후다. 정희왕후는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 계승 서열 영순위였던 제안대군을 제쳐두고 죽은 첫째 아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잘살군을 왕으로 세운다. 그이가 바로 성종이다. 그러고는 13살에 왕위에 오른 성종을 대신해 무려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대비의 힘은 왕위를 결정할 만큼 크고 높았다.

대개의 왕비들은 친정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았다. 순조비 순원왕후도 그랬는데, 그 유명한 안동 김문이 그이의 친정이었다. 외척들의 전횡에 신물이 난 순조는 아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을 통해 외척의 발호를 막고자 했다. 효명세자는 영민했다. 외삼촌 김유근을 병조판서에서 끌어내려 의금부에 가두고, 외가의 핵심인 김교근을 이조판서에서 물러나게 했다. 개혁적 성향의 청렴한 인사들을 발탁해 쓰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스물두 살 나이로 효명세자는 급서했는데, 순원왕후가 모든 것을 조정한 것 아니냐는 역사의 따가운 눈초리를 아직도 받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어떤 측면에서 조명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 책 ‘왕비의 하루’가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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