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제가 논란이 되자 정부에서는 사회봉사경력 가산제라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허구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방향을 남녀 대립 구도로 몰고 가던 정부

는, 다가오는 새천년 총선맞이에 급급한 나머지 스스로 ‘위헌’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구도에 말려든 몇몇 남성들은 마치

전쟁이 눈 앞에 다가왔기라도 하듯 어제의 전사들이 굳게 뭉쳐 여성

들에 대한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이 기회를 통해 그동안 잠

잠(?)하던 보수주의자들의 전쟁에 대한 숨길 수 없는 미련과, 여권신

장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이 남녀 대립 구도에 기름을 붓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 사회 단체들은 군복무에 대한 차별적이지 않은 보상책을 마련

할 것과 군대문제에 대한 왜곡과 은폐를 중단하고 근본적인 해결방

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점과 대책

은 무엇일까? 21세기 우리가 구축해야 할 사회의 대안적인 형태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생태여성주의(에코페미니즘)는 1970년대 말 여성들이 주도한 반전

반핵 평화·환경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이 운동에 참여

했던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전쟁 및 자연에 대한 폭력 사이

의 연관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기술, 여성착취 및 여성억압, 끊임

없는 성장을 지향하는 산업체제 사이의 연관성을 간파하게 되었다.

즉 산업전쟁꾼들에 의한 지구의 황폐화와 군사전쟁꾼들이 저지르는

핵무기에 의한 파괴가 갖는 밀접한 관계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전

쟁을 용감한 남성들의 위대한 전유물인 것처럼 내세워 생태계를 파

괴하고 인간을 살상한 뒤 자본을 가산하고 있는 이들의 실상을 파악

한 것이다. 이들을 위해 헐값으로 봉사하는 군인들이나, 무상으로 가

사노동하는 여성들이나, 무료로 쓰여지는 자연이나 다를 바 없는 것

이다.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 하에서 공짜로 제공되는 것들이고 절대

로 보상되지 않는다. 산업주의와 군사주의가 맞물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담보물로 잡고 있는 것이다.

생태여성론자인 마리아 미즈는 전쟁논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

다.

“생태여성론은, 남성들은 여성, 자연 및 다른 민족에 대한 그들의

전쟁놀이를 계속하는데 반해 여성들은 언제나처럼 또다시 생태적 청

소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많은

남성들이 이 전쟁으로부터 벗어나 여성과 자급자족 노동 및 생명을

위한 책임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이같은 전쟁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

다고 여겨지는 양성 관계도 변할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우선 요구되는 것은 탈군사화라는 것, 즉 지금까지 경

쟁, 성장, 공격성, 지배욕, 소유욕 등 남성적 가치로 여겨졌던 것들이

배려, 사랑, 연대, 생명이라는 여성적 가치들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속한다고 여겨졌던 가치 및 특

성들이 사실은 남성도 공유하고 있는 인간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

즉 가부장적-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은 의도적으로 남성적, 여성적이

라는 가치 분류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강요해 왔다는 것이다.

전쟁=남성·평화=여성으로 구분되어 왔던 도식이 평화=인간=자연

이라는 새로운 가치틀로 변해야 한다. 생태여성주의에서 말하는 대

안사회는 바로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성장지향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적인 산업체제를 문제시하면서 다시금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새천년 새날들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천

년전에 버렸어야 할 군사주의, 성장중심주의 등 낡은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롭고 친환경적인 생태사

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마지막으로, 남성의 전유물로 받들어져 온 전쟁·군대가 인간이 살

공간, 생물이 숨 쉴 자연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위

기의 시대에서도, 군가산제를 부과하자고, 여자도 군복무를 해야 한

다고 말하고 싶은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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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부에서 활동했고, 95년 북경여성

대회에 ‘여성과 환경위원회’ 간사로 참석했다. 현재 KDI(한국개발

연구원)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중이면서 '녹색에너지소식' 편집위원,

청년생태주의자(KEY) 회원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여성환경연

대’ 에코페미니즘 세미나팀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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