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절반이 여성, 선거권이 남녀 모두에게 주어지듯
시민 대표자 될 수 있는 권리 또한 남녀에게 동등하게 부여돼야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식물 국회에 새로운 활력소(?)가 투하됐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재 획정을 판결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구의 통폐합과 관련된 문제로 일명 밥그릇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에 이전투구식 활력이 넘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지역구별 인구 편차를 3 대 1에서 2 대 1 이하로 조정하라는 입법 기준을 제시했다.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 인구 편차가 3 대 1에 달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선거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2014년 9월 말 현재 총 인구수는 5128만4774명이고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구는 246개로 평균 인구수는 20만8475명이 된다. 이를 기준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인구기준 불부합 선거구 현황을 보면, 상한 인구수는 27만7966명, 하한 인구수는 13만8984명으로 인구상한 초과 선거구 수는 37개, 인구 하한 미달 선거구 수는 25개로 적지 않은 선거구의 통폐합이 예상된다. 물론 현재 인구 기준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자치구 및 시‧군안에서 경계조정을 통해 인구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통합 및 분구되는 선거구의 수는 이것보다는 적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뉴시스 여성신문
헌법재판소 ⓒ뉴시스 여성신문

헌법재판소 판결의 기준은 투표 가치의 등가성 원칙이다. 평등선거의 원칙은 모든 선거인에게 1인 1표를 인정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1표의 가치가 대표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해 기여한 정도에 있어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투표 가치의 등가성의 원칙이 실현돼야 함을 의미한다. 최소 선거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득표수보다 최대 선거구에서 낙선한 후보의 득표수가 더 많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표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대표성 확보를 위한 투표 가치의 등가성 원칙의 견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헌법재판부의 결정은 진일보한 판결이라 할 수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헌법재판부의 반대 의견으로 제시됐던 것처럼 도‧농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인구 비례 못지않게 지역 이익이 대표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은 투표 가치의 등가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또 하나는 헌법재판부에서도 고려하지 못한 사항으로 투표 가치의 성별 등가성의 문제다. 인간은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태어난다. 따라서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시민의 절반이 여성이다. 선거권이 남녀 모두에게 주어지듯이 시민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권리 또한 남녀에게 동등하게 부여돼야 한다. 즉, 투표 가치의 등가성은 투표자의 성이 선거 결과에 있어 성별 대표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투표 가치의 성별 등가성은 단순히 선거구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으로 실현될 수 없다. 선거제도 전반에 걸친 성별 영향평가를 실시해 투표 가치의 성별 등가성과 성별 대표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 전체를 개혁해야 한다. 남녀동수제의 도입과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 중선거구제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과 같은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가 선거구 재획정 논의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

개헌 논의가 수면으로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선거구 재획정 문제가 단지 선거구 수의 증감 논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치제도 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대표성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일차적으로 국회의원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이를 기점으로 선거구 확장을 비롯한 선거제도 전반에 대해 독립된 논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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