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갈등은 계층 간 갈등이다. 한국인의 갈등의식 특성과 변화에 대한 연구(윤인진·단국대 갈등연구센터)에 의하면 계층 간의 갈등이 노사·지역·이념·세대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갈등지수가 2위(삼성경제연구소·2010년 기준)로 이제 한국 사회는 갈등 사회가 됐고, 갈등 문제 해결은 한국 사회의 최대 과제로 국가적 어젠다가 됐다.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선진 일류 국가도 될 수 없다. 그래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해 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시대의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말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두산백과)를 말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선장과 승무원들이 보여준 태도와 자세, 행동에서는 도덕적 책임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떠한가? 통계청이 2011년 11월에 발표한 기부 관련 통계를 보면, 우리 국민 중 36,4%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고, 1년간 기부 횟수 6.1회, 1인당 기부 금액은 16만7000원이다. 물론 10여 년 전에 비하면 기부 참여자도 늘어나고 있고, 기부 금액도 많아져 기부가 활성화되고 기부 문화도 크게 나아지고 있지만,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과 비교(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2013년 기획연구보고서 참조)하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국내외 사례 네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전쟁 때, 프랑스 칼레의 시민 이야기다. 승리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칼레시의 시민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6명의 시민 대표를 처형하겠다고 하자, 칼레시의 시장, 귀족, 부유한 상인들이 앞다투어 죽음을 자청한 사례다.

둘째,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2000여 명이 전사하고, 포클랜드전쟁 때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사례다.

셋째, 1943년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 지방에서 키아라 루빅 수녀가 시작한 포콜라레 운동이다. 포콜라레는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란 말이지만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부자와 가난한 자가 따뜻한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빵 조각을 나누며 일치를 위한 사랑의 대화를 하는 운동이다. 지금은 국제마리아사업회가 전개하고 있는 이 운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의 불꽃 지피기로 인류 사회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새 인류운동, 새 가정운동이며, 전 세계 180여 개국에서 전개되고 있다.

넷째, 우리나라의 경주 최 부자의 육훈 얘기다. 최 부자 댁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권력에 탐욕을 가지지 말고 휘둘리지 말라는 의미)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재산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가난한 사람들은 흉년으로 고생하는데, 남이 불행한 도중에 행복을 누리지 말라는 의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이 여섯 가지 훈육 내용은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이상의 네 가지 프랑스 칼레의 시민, 이튼칼리지 출신의 참전 사망, 포콜라레 운동, 경주 최 부자 댁의 여섯 가지 훈육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계층 간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지고 있는 자, 많이 배운 자, 누리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이 시대의 도덕적 책무를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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