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새 도서정가제가 드디어 시행됐다. 법 시행 한 달여 전부터 엄청난 폭의 세일로 책 재고 처리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법 시행 전날은 급기야 오래된 책을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구입하려는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일부 대형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도서정가제란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 통과로 시행된 제도로, 그동안 19%까지 가능하던 도서 할인율을 15%까지로 제한하고, 이를 도서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책에 적용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번에 바뀐 도서정가제는 동네 영세 서점을 보호하고 살리자는 취지에서 시행됐다느니, 실제로는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위한 법이 됐다느니 각자의 손익계산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란을 보면서, 도서정가제 덕분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읽지 않던 책을 좀 더 많이 읽게 될까 내심 기대해본다. 사실 우리나라 성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0.8권으로 독서량에서 세계 166위로 최하위권이다. 국제도서관연합회 발표 결과인데, 미국은 6.6권, 일본은 6.1권. 프랑스는 5.9권, 중국은 2.6권으로, 많은 나라 국민들이 우리나라 국민들보다 책을 훨씬 더 많이 읽고 있다.   

왜 우리 국민들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3년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의하면 ‘바빠서, 읽기 싫어서, 시간이 없어서’ 책 읽기가 어렵다고 한다. 바쁘고, 읽기 싫고, 시간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뿐일까. 현대인의 삶이란 모두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로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분주한 삶 속에서 벗어나 오롯이 책 읽기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됐고 이를 위해 함께 책 읽는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슬로 리딩’ 클럽이 그것이다. 

슬로 리딩(slow reading), 즉 지독(遲讀)은 데뷔작 ‘일식’으로 1999년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창시한 용어로, 한 권의 책을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으라고 권한 말이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으면 각기 다른 책 열 권, 스무 권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양(量)’의 독서를 끝내야 한다. 속독 후에 남는 건 단순히 읽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런 독서는 무의미하다”면서 슬로 리딩을 권한다.  

슬로 리딩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정한 시간과 장소에 사람들이 모인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책 읽기를 시작한다. 슬로 리딩은 소리 없이 시작한다. 독서를 한 뒤에 토론도 하지 않는다. 단지 쉬면서 책을 읽는 것이다. 작은 노트 한 권씩 나눠 가지고 인상적인 글귀를 메모한다. 유일한 철칙은 모임 전에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 기기의 전원을 끄는 것이다. 독서에 완전히 몰입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최근 미국 시애틀과 브루클린 보스턴과 미네아폴리 등 수많은 도시에서 슬로 리딩 클럽이 생겨나고 있으며, 뉴질랜드 웰링턴, 그밖에 유럽에서도 슬로 리딩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로수트는 “우리가 오로지 내적 상태에 있게 되면 모든 감동은 열 배나 더 커진다. 소설가가 쓴 책은 꿈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보다 더 선명하고 더 오래 기억되는 꿈으로 우리를 뒤흔들 것이다”라고 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도서정가제의 폭풍에 흔들리지 않고, 슬로 리딩으로 진정한 책 읽기에 빠져보는 일,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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