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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선우 시인이 첫 시집 '내 혀

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비평사, 5천원)을 펴냈다.

김선우 시인의 강점은 어머니의 ‘몸’에 대한 구체적 형상화를 통하여 여성성

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건강하게 노래하는 대목이다.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

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 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

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 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 마을 여인의 성

기는 비탈을 닮아간다는,/ 세간 속설이 내 마음에 천둥 소낙비 뿌려/ 어머니 몸을

닦아드리다 온통 내가 젖는데/ 겅성드뭇한 산비알/ 열매가 꽃으로 씨앗으로 흙으

로/ 되돌아가는 소슬한 평화를 보았네”(‘내력’ 부분)

또 ‘어라연’같은 시에서 시인은 늙은 어머니의 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며,

동일할 수밖에 없을 여성의 운명을 노래한다. “어라연 계곡 깊은 곳에/ 어머니

몸 씻는 소리 들리네// 자꾸 몸에 물이 들어야/ 숭스럽게스리 스무살모냥...../ 젖

무덤에서 단풍잎으로 훑어내시네// 어라연 푸른 물에 점점홍점점홍/ -그냥 두세

요 어머니, 아름다워요” 세월의 기억이 아로 새겨져 결코 아름답다 할 수 없을

어머니의 몸을 시인은‘아름답다’고 말한다. 그 ‘삶’을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

능한 일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저에게 늘 화두처럼 따라다녔어요. 제가 여성이고, 여성으

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죠. 어릴 때는

엄마를 사랑할 수 없었어요.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를 대신할 아들을 보기 위

해 9남매를 낳으신 엄마를 어떻게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러다 작년 뇌

경색으로 쓰러지신 엄마 병수발을 하며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몸을 통해 내

가 나왔고, 이 몸을 움직여 우리를 길렀고,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

의 몸. 저는 생명성을 담고 있는 엄마의 몸을 보면서, 여성성을 이해했고, 그 얼

룩들을 보듬어 주는 일이 시인으로서 저의 역할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김선우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인식은 윤회론적·물활론적 세계관으로 지평을 넓

혀가는 한편, 에코페미니즘의 세계와도 조우한다. ‘숭고한 밥상’에서 시인은

“생일상을 들다가 문득, 28년 전부터/ 어머니를 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다. 그리고 “지금 먹고 있는 닭 한 마리/ 내 할아버지를 이루었던 원소가/ 누이

뻘인 닭의 깊은 곳을 이루고/ 누이와 살을 섞은 내 핏속”에도 흐르고 있다는 깨

달음을 얻고는 “무저갱의 밥상 위에/ 발가벗고 올라가 눕고 싶다”고 느낀다.

“어머니가 나를 잡수실 수 있게”말이다. 이런 인식은 다른 시‘양변기 위에

서’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는

다”는 시인의 목소리는 순환과 조화를 생각지 않는 현대인에게 반성을 촉구한

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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