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 그린스쿨을 가다

 

그린캠프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발리식 진흙놀이
그린캠프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발리식 진흙놀이

5살 아들 규민이와 함께하는 첫 배낭여행을 다소 무모하게 필리핀 마닐라 1주, 인도네시아 발리 3주라는 기간과 장소만 정하고 무작정 떠났다. 발리의 ‘그린스쿨’이 유일하게 계획된 일정이었다. 

 

학교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그린스쿨의 메인 캠퍼스는 대나무로 지어졌는데 크기와 정교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학교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그린스쿨의 메인 캠퍼스는 대나무로 지어졌는데 크기와 정교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린스쿨은 유치원 과정부터 고등 과정까지 정규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그린스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문 프로그램, 방학 기간에 진행되는 어린이 캠프와 가족 캠프 등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설립된 지 10년이 채 안 됐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침팬지의 대모’ 제인 구달이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또 세계 각지에서 아이들을 그린스쿨을 보내기 위해 발리로 이주하기도 한다.

발리 동남부에 위치한 그린스쿨은 캐나다인 존 하디(John Hardy)와 그의 아내 신시아(Cynthia)가 2008년 설립했다. 2007년 은퇴한 이들이 학교를 세우게 된 배경은 현재 환경운동가로 기후변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전 미 부대통령 앨 고어(Al Gore)가 제작한 ‘불편한 진실’을 보고 지구를 위해 무언가 역할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발리 그린스쿨의 비전은 자연에서 얻는 영원한 교훈을 새로운 학습 모델로 삼아 젊은 그린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린스쿨 패밀리 캠프 오리엔테이션 때도 안내자가 가장 강조한 단어는 바로 ‘지속가능성’이었다. 그린스쿨은 지속가능을 실천하기 위해 학교 안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태양광과 수력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 생태 화장실을 사용해 물을 아끼고 퇴비를 만들어 학교 안에서 키우는 작물들의 거름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인도네시아의 특산품인 대나무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알랑알랑 풀로 지어졌고, 모든 가구도 대나무로 만들어져서 시설의 친환경성을 높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그린스쿨의 그린캠프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그린스쿨의 그린캠프
지난해 12월 19일부터 21일까지 2박3일 동안 직접 참가한 패밀리 캠프는 아들과 나 우리 가족을 포함해 9가족 27명이 참가했다. 참가 가족도 한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 국적과 연령대도 다양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시간엔 그린스쿨이 추구하는 가치, 2박3일 동안의 캠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그린스쿨 전체를 둘러보면서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정규 과정의 학생들은 평소 어떻게 학교 안에서 생활하는지 등의 소개를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숲속 곳곳에 있는 대나무 건축물을 둘러보는 것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에서의 자유 시간이었다.

그린스쿨은 8만㎡(약 24000평) 규모로 계곡과 언덕을 끼고 있는데, 학교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Heart of School’(학교의 심장) 건물은 대나무 구조물의 3층 건물로 그 크기도 압도적이지만, 알랑알랑으로 지붕 일부를 투명 재질로 활용해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도 신기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공학적인 최신 기술의 만남이 경이로운 친환경 건축물을 탄생시킨 것 같았다.

‘Heart of School’은 강당과 도서관 그리고 교실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에겐 1층만 허락되어 좀 아쉬웠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나무 악기,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와 교실의 대나무 책상과 걸상 그리고 책장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가구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이 됐다.

 

그린스쿨의 친환경 놀이터
그린스쿨의 친환경 놀이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자연그대로 넓은 운동장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자연그대로 넓은 운동장
5살 아이가 가장 좋아한 곳은 누가 뭐래도 놀이터였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플라스틱 소재의 미끄럼틀이나 놀이기구는 없어도 천연 잔디에 폐타이어와 밧줄로 만든 그네와 대나무로 만든 구름다리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 공간이 됐다. 운동장 한쪽으로는 농구장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농구 골대도 대나무로 만들고 관람석도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농구장 한쪽에는 대나무로 만든 악기도 여러 개가 놓여 있었는데, 학교 학생들이 함께 제작하고 연주회도 하겠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식사시간. 음식은 80% 이상이 학교 안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해 수확한 것이고 대나무를 엮은 바구니 위에 바나나 잎을 얹은 그릇에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담아 먹는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대나무는 대나무끼리 분리하고 바나나 잎은 학교 안에서 키우는 가축에게 여물로 주기 위해 따로 분리하고, 숟가락·포크 등의 설거지와 잔반을 따로 분리해 최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2일 차 프로그램은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자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오전엔 그린스쿨 주변 산책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특이한 수목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풀과 나뭇잎을 이용한 놀이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아이들이 우리 주변의 식생들에 관심을 갖고, 자연물을 이용해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오후 시간엔 천연 염색과 초콜릿 만들기를 했다. 체험을 하기 전에 왜 우리가 이런 것을 하는지 참가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발표하면서 체험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도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 열매의 껍질을 벗기고, 열매를 볶고 난 후 속껍질을 제거하고 절구에 빻아 채에 거르고 우유와 함께 섞어서 졸여내는 전 과정을 체험하면서 초콜릿을 만드니, 그 맛에 대한 참가자들의 평가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린스쿨의 생태화장실
그린스쿨의 생태화장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책장이 예쁘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책장이 예쁘다

 

학교 투어를 하면서 그린스쿨의 규모와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다.
학교 투어를 하면서 그린스쿨의 규모와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다.
야간 프로그램은 ‘나이트 사파리(Night Safari)’로 그린스쿨 안에 살아가는 야행성 동물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제일 흥미로워했던 시간이기도 했는데, 카멜레온, 전갈, 두꺼비, 거미 등 아이들은 벌레와 파충류 등 평소엔 잘 모르던 살아 있는 자연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간의 서먹했던(?) 거리를 좁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은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국제 이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입어보고, 사원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매일같이 지극정성 신께 올리는 짜낭(Canang)을 만드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캠프의 마지막은 진흙 운동장에서 함께 뒹굴기! 발리의 청년들과 함께 발리식의 진흙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다 날려 보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우리 모자에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환경적으로 살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의 연령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린아이들은 프로그램을 따라오는 것이 버겁기도 했고, 큰 아이들은 조금은 시시해하기도 하고, 또 어린 동생들에게 양보하느라 마음껏 즐기지 못한 것 같았다. 열 살 전후해서 아이가 너무 어리지 않을 때 참가하면 체력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더 흥미를 갖고 캠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음 도전으로 규민이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야생캠프를 떠나야겠다.  

 

발리 전통복장을 하고 있는 규민이
발리 전통복장을 하고 있는 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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