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책상도 없이 작은 소반 위에서 글 쓰던 엄마의 단아한 모습 생생
“치열하고, 반듯하고, 겸손하게 사셨던 엄마 ‘삶과 가족’ 중요하게 여겨”

 

수필가 호원숙씨가 어머니 박완서 선생 사진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다. ⓒ문학동네
수필가 호원숙씨가 어머니 박완서 선생 사진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다. ⓒ문학동네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신 지 4년이 되었다.

지난 연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어머니의 초기 산문집 7권의 교정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 크기와 벅찬 두께에 질려서 동생들에게 도움을 청해 나누어 읽으며 교정을 보게 되었다. 딸들이 머리를 맞대고 엄마 글을 소리내어 읽으며 토씨 하나 낱말 하나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딸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아보고 일깨우며 각성을 해 주는 것 같았다. 지나온 1970년대, 80년대의 시대상이 거울처럼 비추며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잊고 있었던 사건들과 소소하지만 어여쁜 기억들의 단편이 갈피갈피 숨어 있었다. 사회를 향해 따갑고 날카롭고 준엄한 비판의 칼을 휘두르다가도 따뜻한 기운을 퍼지게 하는 펜의 기운이 있었다.

나의 눈앞에는 보문동의 한옥에서 번듯한 책상도 없이 작은 소반 위에서 글을 쓰시던 엄마의 단아한 모습이 그려진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도 있었지만 그 안방에 퍼지던 훈훈하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 같은 행복한 냄새가 함께 그려진다. 자식들이 드나들며 퍼뜨렸던 젊음의 바깥 활기가 엄마의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의과대학 시절 연극을 했던 동생은 “엄마의 글에는 운과 리듬이 있어. 소리내어 읽어보면 한 낱말 한 낱말 토씨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라고 했다.

나는 교정을 보면서 꺼내 본 두 권으로 된 ‘새 우리말 큰 사전’을 보고 다시 머리가 숙어졌다. 사전은 두 손으로 들기에도 두껍고 무거웠고 너널너덜 해어지고 손때가 묻었지만 엄마의 눈길이 닿았듯 찾아 보면 영락없이 사전 속에 있는 낱말이었다. 엄마의 글은 그냥 쉽게 쓰여진 글이 아니라 사전을 찾고 찾아 확인하고 다시 확인했던 흔적이었다.

또 한 동생은 엄마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나, 얼마나 반듯하게 사셨나, 얼마나 겸손하게 사셨나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막내 동생은 엄마가 작가로서가 아니고 엄마로 늘 느끼게 해 주었다는 것이 고맙다며 엄마를 그리워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하나 남다른 사랑을 받았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성장했는지 감사했다.

내가 엄마를 마음 깊이 존경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삶과 가족을 가장 중요시했다는 것, 멀리서 사랑받고 존경받기보다는 가까운 사람, 부딪히는 사물과 인연을 소중하고 깊게 여기셨다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문학을 만든 길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문학에 대해서는 어떤 찬사와 경탄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목소리가 또 들린다. 부의 편재를 경계했듯이 넘치고 지나치는 것을 가장 싫어했고 아무리 좋은 사상과 이론이라도 경도되고 치우치는 것을 염려했던 엄마의 균형감각을 생각하게 된다.

이번 어머니의 4주기에 어머니의 산문집 7권과 함께 내가 쓴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가 나온다. 나에게는 첫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가 나온 후 두 번째로 나오는 책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과 그 후에 쓴 애모의 글이다.

그렇게 일찍 홀연히 가실 줄 모르고 쓴 글들과 돌아가시고 난 후 슬프도록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쓴 글이다.

어머니의 문학이라는 큰 산맥에 비한다면 나의 책은 한 줄기 시냇물에 불과하지만 그 산맥의 젖줄을 타고 흘러내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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